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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아 Nov 08. 2022

펼침과 접힘

혹은 접을 때를 번번이 놓치는 자의 변명


1. 가르치고 쓰면서 먹고 산다는 건 펼침과 접힘의 순환 속에서 사는 일 같다. 가르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자료들을 찾아 조립하고 다듬는다. 하지만 한 주 한 번 혹은 두 번이라는 리듬 속에서 수업의 준비와 실행, 돌아봄이 단단하게 엮이지는 못 한다. 묵직한 주제들을 한 주를 단위로 '쳐내는' 일이 만만치 않다. 학생들과의 대화 속에서 반짝이는 통찰을 얻기도 하지만 여전히 성긴 생각들은 사방에 흩어진 파편으로 존재한다. 그 과정을 가지런히 묶어내는 일이 바로 쓰기다. 


2. 5년 여 어머니와 나눈 대화를 엮어냈고, 석사 과정 이후 품었던 영어교육에 대한 관점을 내딴에는 친근한 언어로 묶어 냈다. 리터러시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관점을 엄기호 선생님과의 협업을 통해 대담으로 정리했고, 10여 년 인지언어학에 대해 고민했던 바를 '대중의 언어'로 소개했다. 그 과정이 모두 만족스러운가 묻는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지만, 사실 그건 만족이나 불만족의 문제라기 보다는 내가 가진 한계의 문제다. 펼침도 접힘도 내 한계 속의 운동일 뿐이다. 늘 말하듯 지금의 나는 나의 역사, 나의 가능성, 나의 한계이다. 


3. 강사로서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펼쳐냈다. 감당할 수 없었으나 감당해야 했던 일이었다. 어떻게든 해냈으나 제대로 해내지 못 한 일이었다. '먹고사니즘'을 핑계로 닥치는 대로 강의를 한 세월이 7년 쯤 된다. 이후 자의 반 타의 반 강의가 줄고 일상이 조금 단정해졌지만 많은 주제들을 (억지로/어쩔 수 없이) 횡단하며 그 누구보다 잡다한 고민을 해 왔던 경험이 쉬이 증발하지는 않는다. 


물들어야 할 때와 헤어져야 할 때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나무들


4. 그래서 가끔 고민이 된다. '계속 펼치기만 하다가 하나도 정리 못 하고 가는 거야?'라는 질문을 되뇌인다. 쓰기로 약속한 글도 제대로 써 내지 못 하면서 새로운 시작을 탐낸다. 


5. 문제는 내 생각의 지형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내가 이것 저것을 펼쳐 놓았던 대지에 나는 더 이상 거하지 않는다. 느리지만 계속 걸어 왔기에 돌아가기엔 이미 늦었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고민이 싹튼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6. <영어로 논문쓰기> 강의를 시작하던 2016년 경부터 준비하던 원고가 있었다. 정말 건조하게 '영어로 논문을 쓰는 법'에 대한 가이드였다. 기존의 표현 모음집은 아니었지만 '영어 논문'이라는 키워드를 앞세운 기획이었다. 쓰기에 대한 개념적 이해, 사회적 관행으로서의 학술 커뮤니케이션, 사고의 구조로서의 논문, 장르 분석법에 기반한 텍스트 이해 등을 주요 내용으로 넣었다. 이걸 가지고 여러 차례 강의를 했고 멋진 연구자들을 많이 만났다. 


7. 출판 제의도 두어 번 받았다. '언젠가 때가 되면'이라고 말을 흐리기도 했지만 쓰지 않을 이유가 없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팔리고 안 팔리고를 떠나서 함께하는 석박사 과정 학생들에게 권할 수 있을 정도의 책이라면 존재 이유가 없지는 않을 것이라 여겼다. 


8. 그런데 요즘은 잘 모르겠다. 영어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영어의 권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변화하고 있고, 지금 내가 '영어로 글쓰기'를 강조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자꾸 의심하게 된다. 이러다가 다시 강좌를 열겠지만, 그리고 애초부터 나의 강의가 '영어 자체'에 대한 강의였던 적도 없지만, 영어로 글을 쓰는 일의 가치, 그것이 한국의 학술장과 공론장에서 점하는 권력 혹은 무용함에 대해 생각할수록 예전처럼 강의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9. 말년의 학자들이 '제자 양성'에 힘을 쏟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변화하는 지형 속에서 고민하고 궁리한 바를 모두 가지런한 글로 정리할 수는 없기에, 아울러 대화라는 형식이 가진 힘과 아름다움이 존재하기에 자신이 가진 것들을 최대한 나누려 애쓰는 것이리라. 그런데 나는 이 마저도 잘 모르겠다. 내 사유가 그렇게 가치있는 것인지, 남길만한 것인지, 배울만한 것인지. 나의 글을 읽어 주시는 독자들과 수업에 함께 하는 학생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하지만,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10. '성공'은 물론이고 '성취', '자부심', '자긍심', '뿌듯함' 등의 단어들이 허공에 아니 마음에 부유한다. 그것들은 어쩌면 이 시공간 곁의 다른 멀티버스에 위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펼쳐야 할 때와 접어야 할 때를 정확히 아는 이들이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정말 잘 모르겠다'라는 심연의 목소리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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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어야 할 일들이 쌓여 간다. 

사랑의 빚이 쌓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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