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고맙고 더 깊이 죄송스러운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의 무게와 총칼의 잘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 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 전태일(全泰壹, 1948년 8월 26일 ~ 1970년 11월 13일)
열사가 마지막으로 남겼다고 알려진 편지를 필사했었다.
그저 고맙다고 말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지만 매일 만나는 이들이 있다.
전태일 열사 52주기.
그를 기억하며
언젠가 응했던 짧은 인터뷰를 끄집어낸다.
인터뷰어: 이번 질문은 인터뷰의 고정 질문입니다. 선생님의 삶에 영향을 미친 ‘인생의 책’에 대해 들려주세요. 언제, 어떻게 만났고, 선생님께는 어떤 의미로 자리잡았나요?
답: 제게 큰 영향을 준 책이 몇 권 있습니다만, 제 마음에 가장 깊이 남은 책은 고 조영래 변호사께서 쓰신 <전태일 평전>입니다. 대학 초년생 때 접한 책인데요. 선배에게 받아 든 <전태일 평전>을 두 번 연거푸 읽으며 밤새 눈물을 닦고 또 닦아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자신의 몸이 부서질 듯 힘들고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전태일. 하지만 그가 보여준 헌신과 사랑은 돈과 권력, 허황된 욕망을 우습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를 만나고 나니 살아온 길이 참으로 부끄러웠지만, 또 그로 인해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늘 고맙고 또 미안한 책이 되어버렸네요.
* 사진 출처: 전태일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