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러시 생태계의 변동을 이해하기 위한 네 가지 관점
아래는 2020년 한글날 학술대회 <한글, 문해력, 민주주의>에서 발표한 원고입니다. 어제 오늘 타임라인에서 문해력을 논하는 포스트를 보고 이 원고가 기억났습니다. 현시기 문해력의 문제를 이해하고 논의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텍스트와 본문 이미지를 연이어 올립니다.)
I. 들어가며: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 리터러시의 과제
2020년 3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9 국민 독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10월부터 2019년 9월까지 성인의 종이책 연간 독서율은 52.1%, 독서량은 6.1권이었다. 2017년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7.8포인트, 2.2권이 줄어든 수치다. 종이책을 매일 읽는 비율은 성인이 2.3%, 초·중·고 학생은 15.4%로 나타났다. 가장 자주 이용하는 매체는 성인의 경우 인터넷신문, 학생은 웹툰으로, 각각 응답자의 27.9%, 36.6%를 차지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성인 응답자 다수가 ‘책 이외에 다른 콘텐츠를 이용하기 때문에’를 독서를 하기 힘든 가장 큰 이유(29.1%)로 답했다는 점이다. (문화체육관광부. (2020). 2019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전통적인 리터러시 활동의 핵심을 이루는 책읽기가 미디어의 변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2019년 9월에 발표된 와이즈앱의 앱 사용량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앱은 ‘전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이 아닌 유튜브였다. 전국민 사용 총량 통계를 보면 2019년 8월 사용 시간을 기준으로 유튜브가 460억분, 카카오톡이 220억분을 차지했다. (송경화. 2019.9.10. 국내 최장시간 이용 앱은 유튜브…10대 월 41시간, 50대이상 20시간. 한겨레.) 가장 널리 보급된 메신저의 무려 두 배가 넘는 시간을 동영상 앱을 사용하며 보낸 것이다. 이는 초등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검색엔진’이 유튜브라는 여러 보도와 함께 우리사회 미디어 지형의 급격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변동과 함께 학교 현장에서 감지되는 ‘문해력 저하’를 이유로 리터러시의 위기를 이야기한다. 읽고 쓰는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긴 글을 읽어내지 못하며 글에 집중하는 시간도 현격히 줄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단은 어느 정도의 경험적 근거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기성세대의 우려와 탄식, 새로운 세대에 대한 실망에 그친다면 리터러시 변동의 근본적 원인을 파악하고 체감되는 ‘위기’를 타개해 나가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리터러시의 근본적 문제들을 논의하면서 변화의 단초를 찾아가야 하는 시기 아닐까 한다.
본고는 전통적으로 논의되어 온 리터러시 개념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이를 위해 현재의 리터러시 생태계 변동 파악에 필수적이라 생각되는 질문을 던지고, 사회적, 교육적 실천을 전개하기 위한 네 가지 개념적 준거를 제안한다. ‘리터러시’라는 개념의 방대함과 지면의 한계로 포괄적 분석이나 역사적 개관보다는 생산적 논의를 위한 관점을 제시하시는 데 방점을 두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전통적인 리터러시 개념의 한계를 ‘텍스트 중심주의의 탈피’, ‘세대에 기반한 문해력 저하 담론에 대한 문제제기’, ‘텍스트 해독을 넘어선 관계와 맥락의 유기적 통합’, ‘리터러시의 공공성 개념 신장’이라는 네 가지 관점에서 검토하고 관련 실천방안을 논의한다.
II. 리터러시: 전통적 논의의 한계점 네 가지
1. 텍스트 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 멀티리터러시와 생애사적 관점
리터러시와 미디어의 지형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문해력’ 담론의 중심에는 텍스트 즉 문文이 자리잡고 있다. 학교현장에서 각종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이 활성화되고 있음에도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로 갈수록 활자 중심의 교수학습 및 평가가 두드러진다. 이같은 경향은 철저히 텍스트 중심으로 구성된 모의평가 및 수능시험 등으로 대표되는 표준화 평가에 있어서 그 정점을 이룬다.
텍스트 중심 교육은 문해文解를 대개 수용(reception)에 국한시킨다는 문제 또한 갖고 있다. 즉, 표준화시험은 철저히 해독과 독해 중심의 문항으로 구성되며 학습자들이 자신의 지식과 경험, 의견과 감정을 논리적이고 심미적으로 표현하는 기능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 같은 경향은 평가의 ‘공정성’이라는 담론에 종종 포획되어 그 정당성을 유지하지만 세계의 이해와 또 다른 세계의 창조를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활동을 배제한다. 문해교육의 본질을 저버리는 것이다.
텍스트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을 당장 벗어나긴 힘들다. 과학기술과 문학, 역사와 철학 등은 수천 년 간 텍스트로 전해져 왔다.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가 고스란히 텍스트에 담겨 있는 것이다. 하지만 텍스트 중심성이 일종의 도그마가 되는 것은 경계의 대상이다. 텍스트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인류의 기억에 갇혀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디어 생태계의 변동을 놓치는 일로 연결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반세기 전 뉴 런던 그룹(the New London Group)이 제기한 ‘멀티리터러시’의 개념을 간단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The New London Group. (1996). A pedagogy of multiliteracies: Designing social futures. Harvard Educational Review, 66(1), 60-93. 해당 문단 및 다음 문단의 내용은 뉴 런던 그룹의 중심 문제의식을 요약한 것임.) 이들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 이후 시민의 개인적, 직업적, 공적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IT기술의 발달로 미디어 환경 또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이 상황에서 전통적인 텍스트 중심 리터러시는 ‘멀티리터러시’로의 이행을 준비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학교교육의 중심에 서왔던 텍스트는 이제 의미를 소화하고 창조하는 데 동원 가능한 여러 요소 중의 하나일 뿐이며 음악과 음향효과를 포함한 소리, 환경과 건축적 요소를 포함한 공간, 자세와 몸짓, 적절한 거리두기 등을 포함한 제스처, 색상과 벡터 및 원근법을 포함한 비주얼 등의 요소를 포함한 다양한 미디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교육은 다양한 텍스트를 읽고 인용하고 새로운 텍스트를 써내는 작업에서 탈피해 다양한 의미디자인의 요소(언어, 소리, 공간, 제스처, 비주얼 등)들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유의미한 요소를 동원하여 자신의 의미를 디자인하고, 그 결과 새로운 의미를 세계에 내놓는 방식으로 진화해야 한다. 뉴 런던 그룹은 이를 ‘가용 디자인(available designs)->디자인 과정(designing)->재디자인된 결과물(the redesigned’라는 도식으로 제시한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에 산출물로 나온 ‘재디자인된 결과물’은 새로운 가용디자인이 되어 타인의 디자인 과정에 통합되고, 이런 과정이 순환되고 퍼져나가면서 시민들은 더 나은 사회를 함께 디자인하게 된다는 관점이다. 즉, 개인의 역량이 축적되는 과정이 아니라 의미자원을 창조하고 공유하며 공동의 미래를 함께 디자인해 가는 과정으로서의 리터러시를 제안하는 것이다.
멀티리터러시의 문제의식이 텍스트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해석해내는 능력의 중요성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텍스트 기반 교육이 그 유효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텍스트라는 매체를 독립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학습자가 텍스트에 도달하게 되는 생애사적 맥락에 주목해야 한다. 즉, 텍스트 자체의 특성에 기반하여 리터러시를 이해하기 보다는 텍스트와 인간의 상호작용을 논의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텍스트와 삶의 상호작용’이라는 관점에서 다음 두 가지 시나리오를 살펴보자. 첫 번째는 2020년 현재 40-50대 성인이다. 이들은 텍스트를 기반으로 학교생활을 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초중고 정규교육에 있어 지식의 원천은 교과서였고, 문제집이었으며, 소위 ‘전과’라 불리는 참고서였다. 이들은 인문사회, 과학적 지식의 세계에 텍스트로 입문하였고, 텍스트로 훈련받았으며,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평가를 거치며 성장했다. 대학 이후에 인터넷과 검색, 멀티미디어의 발달로 새로운 지식의 원천을 발견하긴 했으나 지식을 대하는 기본적인 성향은 ‘텍스트 친화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부는 책으로 해야지’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품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10대에서 20대 초반 정도의 청소년 세대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검색과 소셜미디어, 멀티미디어를 중심으로 자신과 지식을, 또 자신과 타인을 연결해 왔다. 학습의 상당부분을 인강(인터넷 강의)으로 채워왔으며,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기 보다는 검색엔진에 키워드를 입력해 결과를 검토하는 방식으로 궁금한 점을 해결했다. 2010년을 전후한 모바일 통신의 급격한 확산으로 어려서부터 ‘손 안의 멀티미디어’를 경험했고, 동영상을 통한 지식과 정보습득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이들은 학교활동을 제외한 일상의 영역에서 ‘보기’를 리터러시의 기본 모드로 삼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한광범. 2020.4.6. 동영상 서비스 이용자 93% "유튜브 시청"…10대는 99.2%. 이데일리.)
이 같은 비교를 통해 리터러시의 실행방식에 관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 두 세대는 비슷한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전략을 활용해 지식과 매체에 접근하는가? 두 집단이 텍스트를 대하는 태도는 같을 수 있는가? 답은 자명하다. 이 두 세대는 사뭇 다른 태도로 텍스트를 대할 수밖에 없다. 어려서부터 서로 다른 미디어를 서로 다른 비중으로 활용하며 생각과 감정, 상상의 세계를 구축해 왔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다른 미디어와 상호작용한 결과 다른 몸으로 길들여졌기에 같은 텍스트라 하더라도 같은 무게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리터러시를 대하는 태도, 습속 등의 문제가 세대라는 선으로 반듯이 갈리진 않는다. 하지만 이 사고실험은 리터러시의 개념화와 교육, 미디어를 매개로 한 소통에 묵직한 시사점을 지닌다. 리터러시는 다양한 미디어를 이해하고 해석하여 활용하는 역량으로 정의되지만 그 실질적인 의미는 다양한 주체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리터러시는 삶과 미디어의 상호작용, 그 가능성으로 이해될 때라야 세계에 온전히 자리잡을 수 있다. 리터러시 교육자와 실천가들이 텍스트와 이미지, 영상과 애니메이션으로 소통하고 가르칠 때 매체만큼이나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중요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젊은층’의 리터러시가 문제인가: 세대에 기반한 문해력 문제제기에 대한 문제제기
리터러시의 척도는 문해력 평가 점수에 기반을 두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한국사회에서 리터러시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은 OECD의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평가이다. PISA는 만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읽기와 수학, 과학 영역의 성취 수준과 추이를 국제적으로 비교하는 평가이며 3년을 주기로 시행된다. (교육부. 2019.12.4. OECD 국제 학업성취도 비교 연구(PISA 2018) 결과 발표.) 흥미로운 것은 항간의 ‘문해력 저하’ 논의가 주로 새로운 세대를 겨냥하고 있음에 반해 실제 데이터는 사뭇 다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18년 PISA 평가에서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읽기에서 2~7위, 수학 1~4위, 과학 3~5위를 기록하였다. 이는 전반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이며 같은 평가의 2015년 순위인 읽기 3∼8위, 수학 1∼4위, 과학 5∼8위와도 그리 다르지 않다. OECD 회원국을 넘어 PISA가 실시된 전체 79개 국가를 대상으로 하더라도 읽기 6~11위, 수학 5~9위, 과학에서 6~10위로 최상위권에 속한다. 따라서 PISA 평가만을 기준으로 할 때 ‘젊은 층의 문해력이 추락하고 있다’는 항간의 비판은 명확한 근거를 찾기 힘들다.
OECD는 PISA와 별개로 국제성인역량조사(Programme for the International Assessment of Adult Competencies; PIAAC)도 실시하고 있다. OECD에 따르면 “PIAAC는 성인의 능력에 대한 평가 및 분석 프로그램이다. PIAAC의 일환으로 수행되는 주요 조사는 성인능력조사(Survey of Adult Skills)이다. 이 설문조사는 성인의 주요 정보 처리 능력(문해력, 수리 및 문제 해결)을 측정하고 성인들이 가정, 직장, 더 넓은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정보와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 국제 조사는 40개 이상의 국가/경제권에서 수행되며 개인이 사회에 참여하고 경제가 번영하는 데 필요한 핵심 인지 및 업무기술을 측정한다.” (OECD. Survey of Adult Skills (PIAAC): About PIAAC.)
그런데 2013년 국제성인역량조사 결과 분석에 따르면 (교육부. 2013.10.8. 2013년 OECD 국제 성인역량 조사(PIAAC) 주요 결과 발표.) 대한민국 16∼65세 인구의 언어능력은 273점으로 OECD 평균 수준이고, 수리력은 263점이었으며, 컴퓨터기반 문제해결력 평가 결과 상위수준에 속한 사람의 비율은 30%였다. 이는 OCED 평균 점수(수리력 269점, 컴퓨터기반 문제해결력 상위수준 비율 34%)보다 낮은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대한민국이 연령 간 편차가 가장 심한 나라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조사 대상을 16∼24세 청년층으로 한정할 경우 3개 능력 모두 OCED 평균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젊은 층의 문해력, 수리 및 컴퓨터 기반 문제해결력이 타 연령에 비해 더욱 높게 평가된 것이다.
이 같은 차이에 대한 명확한 인과관계를 규명할 수는 없으나, 24세를 전후하여 대학을 졸업하는 인구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민의 문해역량이 학교를 떠나면서 하락하는 것 아닌가 하는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자료다. 따라서 문해력 하락을 소위 ‘디지털 네이티브’로 불리는 세대에 국한된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은 문해력을 둘러싼 문제의 진단을 도리어 방해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다시 말해, 문해력을 세대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문해력이라는 현상을 중심에 두고 교차하고 간섭하는 다양다종한 요인들의 매듭을 푸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리터러시 격차에 대한 분석적 성찰을 진행함과 동시에 평생교육과 지속적 성장, 사회적 지원체계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리터러시 교육의 핵심문제를 사유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결론적으로 리터러시는 세대가 아니라 유의미한 학습과 성찰, 사회적 상호작용의 지속가능성이라는 틀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이를 지원할 수 있는 공공 인프라와 정책 및 건강한 공동체 육성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럴 때에 젊은 세대는 ‘책을 읽지 못하는 세대’가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를 오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세대’, ‘기성세대에게 디지털 리터러시를 전수할 수 있는 세대’로 재개념화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앞서 제기한 멀티리터러시 교육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타진될 수 있다.
3. 텍스트 해독을 넘어 관계와 맥락으로: 뉴리터러시 연구의 교훈
리터러시의 척도로 자주 언급되는 PISA는 2015년 현재 크게 다섯 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1) 읽기 리터러시, (2) 수학 리터러시, (3) 과학 리터러시 (4) 협력적 문제해결능력 및 (5) 금융 리터러시이다. PISA 프레임워크에서 리터러시는 “다양한 상황에서 문제를 식별, 해석 및 해결하려 할 때 주요 학문 영역의 지식과 기술을 적용하고, 효과적으로 분석, 추론 및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OECD. What is PISA?) PISA는 또한 읽기 평가에 있어 핵심을 이루는 구인(construct)을 (1) 텍스트 (2) 상황 (3) (읽기) 과정 혹은 양상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제시한다. (PISA for Development Brief 8: How does PISA for Development measure reading literacy?) 텍스트의 내용, 해당 텍스트가 등장하고 논의되는 상황, 그리고 그것을 읽어내는 데 관여하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이들 영역 및 구인은 문해력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임에는 분명하나 표준화 평가에서 측정 가능한 ‘읽기능력’ 혹은 ‘독해력’, 그리고 제한된 상황에서의 ‘협력적 문제해결’역량이 소셜미디어와 웹으로 대표되는 공론장이나 현대사회 팀 중심의 회사구조에서 필요한 리터러시의 요건을 충분히 만족시키는지는 의문이다. 여러 맥락을 고려한다고는 하지만 위에서 말하는 리터러시 능력은 기본적으로 개인이 텍스트를 읽어내는 능력을 말한다. 한 사람이 특정한 텍스트와 맺는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인간 대 텍스트의 관계이다. 하지만 사회문화적 상황에서 요구되는 읽기능력은 단순히 텍스트와 개별 독자 간의 관계만을 수반하지 않는다. 갈수록 텍스트의 내용 뿐 아니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텍스트가 동원되고 활용되는 맥락 및 상대의 의도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그렇기 때문에 텍스트를 소화하는 능력으로서의 읽기 리터러시는 실제 상황의 반쪽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협력적 문제해결’ 또한 목표를 공유하고 상호이해가 가능한 상황에서의 협력을 이야기할 뿐, 타자와의 협상과 갈등 및 설득과정에서 지녀야 할 윤리적, 사회적 태도를 담보하진 못한다.
이처럼 PISA를 포함한 리터러시 측정 도구가 진화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현실의 복잡다단한 맥락과 관계를 온전히 포괄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 필요한 요소를 논의함과 동시에 이를 둘러싼 관계와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 즉 타자와 함께 말글을 향유하는 역량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삶을 곁에 두는 말글, 타인의 삶에 접속할 수 있는 소통, 다름과 혐오에 대한 세밀한 감각이 새로운 시대 리터러시의 화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리터러시 연구의 관점에서 사회적 맥락과 관계에 대한 감수성, 충돌하는 권력에 대한 비판적 인식 등은 80년대 이후 등장한 리터러시 연구의 주요 흐름인 뉴리터러시 연구(New Literacy Studies)의 맥락에서 줄기차게 강조되어 왔다. 뉴리터러시 연구의 관점을 몇 가지 주장으로 압축할 수는 없지만 공통된 지적은 리터러시를 개인의 머릿속에 가두려는 심리학적 리터러시 모델(the psychological model of literacy)에 반기를 들고, 리터러시 사건(literacy event)이 일어나는 구체적 상황을 인류학, 사회학, 언어학적 방법론을 통해 비판적으로 이해하자는 것이었다. 뉴리터러시연구의 관점에서는 단일한 리터러시 역량을 가진 개인이 여러 상황에서 소통하는 것이 아니다. 리터러시 역량은 다양한 맥락에서 인종, 성별, 계급, 직업, 사회적 관계, 친소 여부 등의 요인들에 의해 역동적으로 구성되며 그 특징을 형성하는 데 있어 권력이 늘 작용한다. 따라서 리터러시는 단수(literacy)로서 개인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고 복수(literacies)로서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생성된다. (Gee, J. P. (2015). The New Literacy Studies. In J. Rowsell, & K. Pahl (Eds.), The Routledge handbook of literacy studies (pp. 35-48). Routledge.)
뉴리터러시 연구의 성과는 리터러시를 텍스트와 관련된 역량으로 보는 관점에서 관계와 맥락을 포괄하는 역량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지문을 읽고 문제를 푸는 역량을 넘어, 시험에 활용되는 지문이 생산되는 사회문화적, 정치적 맥락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자신의 삶에 비판적으로 적용하며 타인과 함께 그 함의를 탐구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역량을 요구하는 것이다. 리터러시 행위는 언제나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정렬 혹은 갈등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는 이론적, 실천적 관점이 절실한 시점이다.
4. 리터러시는 개인의 역량: 공공성의 결여가 가지는 문제점
텍스트 독해와 그에 기반한 시험점수로 리터러시 역량을 파악하는 제도적 관행은 리터러시 역량의 신장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글과 책을 읽고, 쓰기를 연습하다가 보면 리터러시가 성장할 수 있고, 이는 기본적으로 각자의 몫이라는 암묵적 가정이 퍼져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공공의 인프라로서의 리터러시, 민주사회의 지적 토양으로서의 리터러시, 사회적 역량으로서의 리터러시라는 관점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철저히 개인의 영역에 머무르는 리터러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세 가지 측면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는 이미 변화를 시작한 학교가 리터러시 교육의 중추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새로운 리터러시 생태계로의 진입을 적극적으로 견인해야 한다. 둘째는 리터러시를 개인의 재능과 노력의 영역으로 제한하기 보다는 보편적이며 사회적인 권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셋째는 공공도서관과 지역서점 등이 리터러시 허브(literacy hub)로 기능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공공 인프라로서의 리터러시’라는 개념을 확장시켜야 한다. 각각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먼저 교육과정과 학교의 변화가 필요하다. 교육과정에 다양한 매체를 유기적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는 이미 여러 교사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앞으로의 관건은 학교가 리터러시 성장의 핵심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리터러시의 외연과 깊이를 더함과 동시에 평가 영역에서 다양한 미디어를 통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들을 도출하는 일이다. 특히 미디어 리터러시 영역에서 새로운 준거점을 마련하고 비판성과 시민성을 핵심 의제로 삼는 일이 요구된다. (교육부. (2019). 2019년 교육부 정책연구보고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정 운영을 통한 시민역량 제고 방안 연구.) 날로 심각해지는 가짜뉴스, 비판보다는 비난이 주류를 이루는 소셜미디어상의 소통, 빠른 사회문화적 변화가 가져오는 세대간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 이주노동자들과 다문화 가정으로 대표되는 문화적 다양성의 증가 속에서 성찰적, 협력적, 비판적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다음으로 리터러시를 일종의 사회권으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개개인의 사회경제적 배경이나 거주지역 등과 관계없이 양질의 리터러시를 향유하는 것을 시민적 권리로 인식시키는 작업이다. 리터러시를 권리로 이해하는 접근법의 일례로 미국의 리터러시 교육가 단체인 국제리터러시협회(International Literacy Association)가 제안한 ‘아동의 읽기권(Children’s Rights to Read)’ 개념을 들 수 있다. (김성우, 엄기호. (2020).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따비. 205쪽.) 읽기권은 사회가 모든 아동이 읽기에 접근하고 지속할 수 있는 실질적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리터러시 활동에 대한 아동의 권리 실현을 위해서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지원이 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아동의 읽기권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아동의 읽기권
1. 아동은 기본적인 인권으로 읽을 권리를 갖는다.
2. 아동은 인쇄물과 디지털 형식의 텍스트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
3. 아동은 자신이 읽을 것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4. 아동은 자신의 경험과 언어를 반영한 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는 창을 제공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다양한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는 글을 읽을 권리가 있다.
5. 아동은 즐거움을 위해 읽을 권리가 있다.
6. 아동은 풍부한 지식을 지닌 리터러시 파트너에게 독서 환경을 지원받을 권리가 있다.
7. 아동은 독서를 위해 따로 긴 시간을 할당할 권리가 있다.
8. 아동은 지역적으로나 전 세계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협력함으로써 독서를 통해 배운 것을 공유할 권리가 있다.
9. 아동은 쓰기, 말하기,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등 다른 종류의 소통으로 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읽을 권리가 있다.
10. 아동은 읽기와 읽기 교육을 지원하는 정부, 기관 및 조직의 재정 및 물질적 자원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권리가 있다.
(https://www.literacyworldwide.org/.../childrens-rights-to...)
국제리터러시협회의 제안은 책읽기에 대한 아동의 권리를 전면에 내세운다. 리터러시의 습관이 형성되는 시기가 아동기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제안은 적절하다. 하지만 이것이 아동에게 국한될 필요는 없다. 특히 공교육으로 대표되는 리터러시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이들, 특히 노년층의 리터러시 역량을 신장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최소한의 삶의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교육 및 문화에 별도의 지출을 하기 힘든 계층에 대한 정책적 포용 또한 절실하다. 따라서 아동에서 시작하여 리터러시 부문의 약자계층을 두루 포괄하는 사회권으로서의 리터러시 학습 및 향유 권리에 대한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 이 같은 노력은 사회 전반의 리터러시 지형을 고르게 하고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작동을 위해 요구되는 소통의 공통지반(common ground)을 넓히는 데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리터러시 생태계의 변동을 받아 안는 공공도서관의 변화와 혁신이 요구된다. 도서관은 학교와 함께 리터러시의 핏줄과 같은 역할을 해내는 기관이다. 현재 여러 도서관은 영상과 전자책, 각종 디지털 미디어로 대표되는 리터러시 생태계의 변동에 발맞추어 새로운 실험을 준비중이다. 이러한 변화는 필연적으로 공공도서관이 기존에 수행해 온 역할에 대한 성찰과 새로운 전망에 대한 창의적 모색을 요구한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정보, 읽고 쓰는 능력, 교육 및 문화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주요 임무는 공공 도서관 서비스의 핵심”이며, 이는 현재의 리터러시 지형에서 새롭게 상상될 필요가 있다. (UNESCO Public Library Manifesto 1994)
공공도서관의 사명
1. 생애발달의 이른 시기부터 어린이의 독서습관 조성 및 강화
2. 개인 및 자체 실시 교육뿐만 아니라 모든 수준의 정규 교육 지원
3. 개인의 창조적 발전을 위한 기회의 제공
4. 어린이와 청소년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하는 실천
5.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 증진, 예술 감상, 과학적 성과 및 혁신
6. 모든 공연예술의 문화적 표현에 대한 접근 제공
7. 문화 간 대화 촉진 및 문화적 다양성 선호
8. 구술 전통(oral tradition)을 지지
9. 시민들이 모든 종류의 지역사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
10. 지역 기업, 협회 및 이익 단체에 적절한 정보 서비스 제공
11. 정보 및 컴퓨터 사용능력 개발 촉진
12. 모든 연령 그룹에 대한 리터러시 활동 및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참여하며, 필요한 경우 그러한 활동을 새롭게 시작함
공공도서관은 위와 같은 도서관의 전통적 역할을 강화함과 동시에, 다양한 매체가 공존하고 충돌하는 멀티리터러시 시대를 맞아 어떤 기능을 새롭게 담당해야 할지 적극적으로 궁리해야 한다. 이와 함께 도서관 존재의 첫 번째 이유가 되는 책을 중심으로 한 리터러시 활동을 다른 미디어로 확장할 수 있는 방안을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이용자 개개인에 대한 정량적 평가에서 자유로우며 리터러시 실험실로서 리터러시의 공공성 강화를 견인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인 공공도서관이 멀티리터러시 허브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는 맞춤형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를 통해 공공의 인프라스트럭처로서의 도서관, 리터러시 체험의 장으로서의 도서관, 사회적 읽기쓰기가 실행되는 도서관, 책과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삶의 영역에 접속할 수 있는 도서관의 상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III. 나가며: 삶을 위한 리터러시를 향하여
현재 리터러시 생태계의 변화 속에서 연구자들과 교사, 여러 교육단체는 리터러시의 재개념화와 새로운 실천을 고민하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학교교육에서도 새로운 실험들이 속속 실행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고는 기존의 리터러시 개념이 갖고 있는 한계를 (1) 텍스트 중심주의로 인한 다양한 미디어 통합 프레임워크의 부재 및 학습자 생애사와의 연계 부족 (2) 문해력 저하를 새로운 세대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세대담론의 문제점, (3) 리터러시 행위자간의 관계와 사회문화적, 정치적 맥락에 대한 고려 부족, (4) 개인 수준의 리터러시 담론을 넘어 사회권이자 공공자원으로서의 리터러시 개념 신장이라는 네 가지 관점에서 검토하였다.
리터러시 개념의 사회문화적, 역사적, 제도적 복잡성을 고려할 때 이러한 논의는 리터러시 생태계를 부분적이고 단면적으로 진단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새로운 논의를 촉발하고 리터러시 실천가들의 연대를 구함에 있어 이들 관점은 작은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리터러시가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기, 혁신과 성찰은 결국 ‘삶을 위한 리터러시’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화두로 모아진다. 서열과 차별, 배제를 넘는 리터러시, 삶에서 시작하여 삶으로 돌아가는, 그리하여 모두가 더 깊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리터러시 실천을 위한 여정을 떠나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