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일에 대한 작은 깨달음

편집자(Editor)가 있고 나서야 편집하는 행위(Edit)가 존재합니다

by 가이아

언어학에서 단어형성을 설명할 때 사용되는 개념 중에 '역형성(back formation)'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어휘 형성의 반대 방향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는 현상을 말하는데요. 많은 예들이 있지만 제게 큰 영감을 준 역형성의 예는 단연 Editor -> Edit 입니다.


수학 문제 풀이처럼 말끔하게 증명할 수는 없겠지만 문헌상으로 볼 때 'editor'라는 단어는 1640년대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때에는 놀랍게도(!) 우리가 알고 있는 "edit"이라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편집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edit이 등장한 것은 1790년대. 즉, 사람을 가리키는 editor가 등장하고 150년이란 긴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edit이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etienne-girardet-9jfpVAhGC1g-unsplash.jpg Photo by Etienne Girardet on Unsplash


아시다시피 일반적인 단어형성 패턴은 direct -> director, play -> player와 같습니다. 영단어 학습의 역사 때문인지 이러한 "동사->행위자"의 방향이 직관적이죠. 하지만 editor의 경우는 '편집하는 사람(editor)'이 먼저 있었고, 이 단어를 본 사람들이 '흠 그럼 edit이라는 단어를 동사로 써도 되겠군'하고 잘못(혹은 논리적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형성이라고 불리는 것이고요.


Editor -> edit 역형성의 예는 제게 작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어떤 직업(profession)이 먼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person)이 먼저 존재한다는 것. 어떤 활동을 해내는 사람이 있고 나서야 특정한 종류의 일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 일이 먼저 있었던 것 같지만 결국 새로운 일을 개척하는 건 사람이라는 것. 직업을 가질 수도 있지만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것.


오랜 시간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 왔습니다.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구획된 어떤 직업을 떠올리면서요.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제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아닐까 합니다. 편집자가 먼저 나고 편집이라는 행위가 단어로 독립했듯이 저라는 존재가 변화되면 일은 따라오는 것이겠지요. 그걸 뭐라고 부르든 말이죠.


묵묵히 일하고 계신 이 땅의 수많은 편집자들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마침 제 옆에도 한 분 있군요. ^^


#배움의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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