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의 미래

원어민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영어교육의 중심으로

by 가이아

(아래는 전국영어교사모임에서 발간하는 <함께하는 영어교육>에 기고한 글입니다. 한국사회 영어교육을 생각할 때 가장 무겁게 다루어야 할 주제라고 생각하는 원어민 중심주의에 대해 논의한 글입니다.)


다른 언어를 배워서 그 언어의 네이티브처럼 말하지 않겠다. 다른 언어를 배워서 그들이 절대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할 것이다.

언젠가 한 수업에서 들은 교수님의 말씀을 기반으로 외국어를 배우는 목표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슬로건을 바탕으로 ‘영어교육의 미래’에 관하여 작은 이야기를 건네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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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사회의 영어교육을 위협해 온 주범으로 ‘네이티브 중심주의(nativespeakerism)’를 꼽습니다. 영어를 배우는 이유야 각양각색이고 다양한 맥락이 존재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영어는 원어민처럼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 중에서도 원어민의 발음과 억양, 정확성과 유창성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이런 생각을 의도적으로 전파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원어민의 영어를 표준으로 삼는 습속이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식 교육과정의 목표가 ‘원어민되기’는 아니지만, ‘숨겨진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이 가리키는 바는 ‘네이티브의 영어가 최선이다’라는 명제입니다. 원어민의 영어를 바람직한 모델로 상정하고, 비원어민 화자는 ‘모자란 존재(a deficient being)’으로 개념화하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영어를 평생 공부하고 영어교사가 된 분들도 ‘원어민처럼 영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일이 생깁니다. 영어로 충분히 자신의 일을 해내고 있으면서도 교사로서의 전문성과 경험을 존중하기 보다는 원어민에 대한 막연한 부러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열등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학습자뿐 아니라 영어 선생님들도 네이티브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죠. 하지만 과연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의 영어가 그들의 영어와 똑같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우리가 갖고 있는 원어민에 대한 은밀한 욕망, 원어민 중심주의적 사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의 영어교육은 우리가 무엇이 되려 하는지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그 욕망의 방향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왜 “네이티브”가 되어야 합니까? 누가 원어민을 우리의 목표로 설정해 놓았습니까? 그런 생각들로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고통을 당하게 됩니까? 원어민 중심주의는 우리가 수업이나 학습자들에게 갖는 태도를 어떻게 바꿉니까? 우리의 목표는 ‘네이티브 되기’가 아니라 ‘하루하루 더 나은 나로 성장하기’여야 합니다. 더 깊고 풍성한 의미를 만드는 사람으로의 성장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키워가는 일 말입니다.


robert-collins-tvc5imO5pXk-unsplash.jpg Photo by Robert Collins on Unsplash


네이티브 중심주의로부터 탈피할 때 우리의 수업은 비로소 정확성이 아닌 의미생산(meaning-making)에 중심을 두고 전개될 수 있습니다. 말하기의 기준은 ‘원어민과 얼마나 비슷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풍부한 의미를 만들어내는가’가 됩니다. 완벽하지 않은 글일지라도, 심지어는 한국어나 낙서가 섞여 있는 작문이라도 그 나름의 의미를 갖습니다. ‘찐한 김치발음’을 비웃지 않는 문화가 만들어지고, 어떻게든 소통하려는 움직임이 자라납니다. 정확성을 촘촘히 계량화하여 평가 루브릭을 ‘짜내는’ 일이 사라집니다. 두려움이 조금씩 걷히면서 비로소 소통하는 우리를 만나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어눌하게’ 소통하고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정확성도 유창성도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부정확에서 정확으로의 변화는 온/오프 스위치처럼 작동하지 않습니다. ‘부정확’不正確에서 ‘부’不를 떼어 내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확성이 발달하려면 부정확을 용인하고, 부정확하게 느껴지더라도 용기 있게 말하고, 나아가 부족한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원어민과 같은 정확성’이라는 족쇄를 풀고 소통하려는 자세를 가질 때 좀 더 정확해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용기와 함께 말은 자라납니다." (김성우, 2019, pp. 123-124)*


네이티브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궁극적으로 학습자를 ‘영어 잘 하는 학생’과 ‘영어 못하는 학생’으로 구분하는 습속으로부터의 탈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그 이전에 한 사람을 만나고 함께 성장하는 사람입니다. 누군가의 영어를 보기 전에 그의 눈빛을, 걸어온 인생을 보려는 노력. 말의 부정확함을 보기 전에 말하려는 바를, 그 안의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을 이해하려는 마음. 그저 영어실력으로 상대를 판단하기 이전에 잠시라도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모습.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우리의 영어교육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바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늘 넘어지고 괴로워하지만 이해와 소통을 위한 영어교육으로, 우리 삶을 살리는 영어교육으로 함께 나아가길 원합니다. 그들의 언어를 배워 그들이 절대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우리만의 이야기를 지어갔으면 좋겠습니다.


* 김성우. (2019). 단단한 영어공부: 내 삶을 위한 외국어 학습의 기본.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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