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친애하는 벗들에게 보내는 인사
1. 학기 마치면 대대적으로 방청소/정리해야지! -> 힘들게 학기 마쳤는데 좀 쉬어야지. -> 다음 학기 시작하기 전에만 정리하면 되지. -> 어, 학기 시작했네! 바쁘다 바빠. -> 뭐 지난 학기에도 이러고 살았는데, 일단 이번 학기까진 버텨보자. -> 학기 마치면 대대적으로 방청소/정리해야지! (무한반복)
저만 이런 거 아니라고 해 주세요. ;;
2. 한 사려깊은 학생이 저의 수업을 "아래로부터의 언어학"으로 명명해 준 것이 계속 기억에 남습니다. 과한 이름이지만 그에 맞는 수업과 연구를 해나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3. "이념보다 실용적 이익을 따른다"는 표현을 보았습니다. 갸웃했습니다. 누구의 실용적 이익을 따르는지가 이념의 주요한 척도 아닌가 싶어서요. 만약 오로지 자신만의 실용적 이익을 따진다면 그것 또한 특정한 이념의 표현 아닐지요.
4. 비판적/참여적 질적연구의 영원한 과제: 위계를 사용하지 않고 어떻게 위계를 뒤집을 것인가. 어떻게 권력을 와해시킴으로써 새로운 권력을 만들 것인가. 어떤 관계를 허물고 어떤 관계로 나아갈 것인가.
생각할수록 참 어렵습니다. 어쩌면 연구는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틈을 만드는 일이고, 그 사이로 빛과 공기가, 새로운 이해와 개념이 들어와 다른 관계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5. "어휴 내가 뭐라고"와 "나라도 꾸역꾸역" 사이에서 괴로워도 계속 걷는 것. 그것 외에 뭐가 있을까 싶습니다.
6. 작년 이후 광고에 ‘문해력’이라는 키워드가 유독 자주 보입니다. 개념의 운명이야 개개인이 제어할 수 없는 것이지만 산업이 개념을 누구보다 먼저 전유하고 확산시키는 걸 보면 양가적 감정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어쩌겠습니까. 저는 제 자리에서 제 일을 하고, 어디서든 온전히 가르쳐 주기를 바랄 뿐.
7. "의심은 즐거운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확신은 우매한 일이다. (Doubt is not a pleasant condition, but certainty is an absurd one.)" - Voltaire
<The Undoing Project> 열었다가 만난 문장입니다.
8. <Don't Look Up>을 봤고, 조금 울었고, 짝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라고 합니다. 나이 드는 것과 끝이 다가오는 일은 꽤나 비슷한 말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9. 우유부단한 성격인지라 크게 후회하거나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별로 없는 편입니다. 그래도 좀 일찍 깨달았으면 했던 건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도 없고,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겁니다. 세상 만사가 다 그렇듯 '좋음'에도 중립은 없겠죠. 중요한 건 누구에게 좋은 삶을 살 것인가이니까요.
10. 로버트 하인라인이 그랬던가요.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rational)이 아니라 합리화하는(rationalizing) 동물이라고.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같은 수준으로 합리화하는 건 아니라서 매사 합리화하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합리적이려고 애쓰는 사람이 답답하고 융통성없고 원칙에 집착하는 걸로 보이기도 합니다. 뭐 저도 늘 합리화하며 살고 있지만요.
덧. 한 해를 보내며
2022년에는 어떤 일이 있을지
큰 기대도 섣부른 염려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저,
세계의 비참과 슬픔에 눈감고
어디가 길인지 분간할 수 없게 만드는
어둠과 혼돈의 시절이지만
서로의 빛되고 길되어
같이 걸어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함께 울고 웃고 아파하고 분노할 수 있어
함께 살고 죽어갈 수 있어
서로의 삶을 목격하고 증언할 수 있어
참 괜찮은 인생입니다.
고맙습니다.
2021.12.31.
김성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