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이해하는 관점에 대하여
1. 아래의 인용구는 매체에 대한 플루서의 탁월한 접근을 보여준다. 기술에 대한 분석은 사용자가 인지하는 도구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투명함 속으로 존재를 숨겨버린 '마법'에 대한 분석이어야 한다. "충분히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Any sufficientl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라는 아서 클라크의 이야기는 먼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2. "모든 매체에는 의사소통의 측면에서 고유의 변증법이 있다. 즉 매체는 그 매체를 통해서 소통하는 것들을 연결하고 분리한다. 덧붙여 말하자면 바로 이 변증법이 매체(medium)라는 개념의 정확한 의미이다. 그러나 정보전달의 과정에서 그것의 존재가 망각되는 매체들(이른바 면대면 매체)이 있다. 예를 들어 원형 탁자에서 대화를 할 때, 이 탁자의 존재는 잊히고, 나아가 우리가 그것을 통해 말을 하고 있는 공기의 존재도 잊혀진다. 그러니까 우리는 몸이 서로 닿지 않는데도 직접적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는 -- 언제나 잘못된 -- 인상을 받는 것이다. 이런 인상이 잘못인 이유는, (모든 분석을 회피하는 신비적 합일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직접적 소통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인상은 비록 잘못된 것일지라도, 그 의사소통을 만족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전화는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결코 잊히지 않는 매체이다. 이것은 전화의 기술적 성격 때문이 아니다. TV는 전화보다 훨씬 더 기술적인데,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의 존재를 잊는다. 불행하게도 이 점이 TV의 담론을 만족스럽게 만든다. 전화 연결망에서의 대화는, 그 대화가 대화를 중개하는 매체를 실질적으로 안보이게 하는 데 성공할 경우에만 비로소 만족스러운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기술적인 도전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적인 도전이기도 하다." (빌렘 플루서, 몸짓들, 203-204)
3. 직업 때문인지 아서 클라크의 제3법칙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언어였다. 말과 기록이야 말로 세계를 바꾼 가장 강력한 테크놀로지이며 마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응용)언어학은 기술에 대한 분석에 큰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4. 언어교육과 테크놀로지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은 기술을 해법(solution)으로 보지 말고 중재(mediation)으로 보라는 것이다. 기술을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보는가 아니면 사회현상의 특정 측면을 역동적으로 바꾸어 낼 중재도구로 보는가, 다시 말해 기술 자체를 신뢰하는가 아니면 기술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삶과 문화 속에 담겨 있는 기술의 모습을 그려보는가에 따라 기술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바뀐다. (물론 최근의 신물질주의 담론에서는 이런 관점도 인간중심적이라는 이유로 비판받고 있다. 이 비판을 어느 정도 수용하지만 수업시간에는 아직 간단히 언급만 하고 넘어가는 상황이다. 이 업을 언젠가 다시 하게 된다면 한 주 정도 해당 관점을 다룰 예정이다.)
5. 며칠 전 소개했던 <Understanding digital literacies: A practical introduction> 또한 기술을 중재로 파악한다. 비고츠키를 중심으로 하고 맥루한에 어느 정도 기댄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들에 따르면 중재는 어떤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특성, 그것이 놓이는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맥락,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 등에 따라서 고유한 기회(affordances)와 제약(constraints)을 지닌다. 플루서가 말한 '변증적 성격'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Jones, R. H., & Hafner, C. A. (2021). Understanding digital literacies: A practical introduction. Routledge.
6. 기회와 제약은 대략 다섯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1) DOING: 해당 기술은 무엇을 할 수 있게 하는가 / 할 수 없게 하는가?
(2) MEANING: 해당 기술은 어떤 의미를 가능하게 하는가 / 가능하지 못하게 하는가?
(3) RELATING: 해당 기술은 어떤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가 / 가능하지 못하게 하는가?
(4) THINKING: 해당 기술은 어떤 사고를 만들어 가는가 / 저해하는가?
(5) BEING: 해당 기술을 통해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는가 / 되지 못하는가?
7. 하나의 기술을 선택하여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을 다면적으로 검토해 보자. 그리고 그 기술이 갖는 변증적 성격을 Jones와 Hafner의 프레임으로 분석해 보자. 예를 들어 책은 어떤 기술인가?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무엇을 하도록/하지 않도록 만드는가? 책을 사용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가? 각기 다른 시대를 거치며 책이라는 매체의 사회정치적 성격은 어떻게 변해왔는가? 동영상과 멀티미디어, 웹툰의 시대에 책이 가지고 있는 성격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지금 중고교 학생들의 삶에서 책은 무엇인가? 여러분에게 책은 무엇이고 무엇일 수 있다고 믿는가?
8. 마지막으로 현재의 교육상황을 고려할 때 책이 갖고 있는 기회와 제약은 무엇인가? (1) 책은 무엇을 할 수 있게/없게 만드는가? (독자 혹은 저자의 입장에서) (2) 책은 어떤 의미를 가능하게 하고 어떤 의미표현을 제약하는가? (3) 책을 통해서 어떤 관계들이 만들어지고 있는가?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맺기 힘든 관계는 무엇인가? (4) 책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사고를 하는가? 독서경험 중에 우리의 머리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무엇인가? 이것은 어떤 생각을 가능케 하고 어떤 사고를 차단하는가? (5) 책을 통해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어가는가? 혹은 되지 못하는가? 독자로서의 정체성은 어떤 스펙트럼을 지니는가? 이러한 위기와 제약은 책이라는 매체에 대한 여러분의 평가를 어떻게 형성해 왔는가? 사회적으로 '책은 이런 거지'라고 당연시되는 성격을 뒤집을 수 있는 실천에는 무엇이 있는가?
9. 이런 분석을 다른 매체로 확장해 보자. 교실에서 파워포인트는 어떤 기회와 제약을 생성하는가? 영어교육에서 번역기의 사용은 어떤 기회와 제약을 생성하는가? 소셜미디어의 '중독적' 사용은 어떤 기회와 제약을 만들어 내는가? 자신이 사용하는 디지털 기기와 소프트웨어는 떤 제약을 만들어 내는가?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엮여서 우리의 행위를, 의미를, 관계를, 사고를, 정체성을 형성하고 조작하고 타격하는 현재의 기술 생태계는 교육을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가?
10. 마지막으로 '나'는 이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중재하는가? 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기회를 생성하는가? 또한 나는 그들에게 어떤 제약으로 작동하는가? 그 변증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 나는 어떻게 변해야 하고, 기술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이 과정에서 내가 속한 공동체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단지 학습자와 시험을 중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중재하기 위해 영어교사는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