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내어 읽기가 만드는 새로운 지평
묵독은 정보를 조용히 받아들인다. 점자와 같은 촉각정보나 활자와 같은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일이다. 이는 텍스트의 정보가 손/눈을 통해 뇌로 들어와 의미화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묵독이 독자의 뇌 속에서 문자정보에 매치되는 청각/촉각/후각/운동 정보의 처리나 목청의 미세한 떨림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시각/촉각정보에 의존한다. 완벽한 침묵은 아니더라도 낭독과는 질적으로 다른 고요함을 지니는 것이다.
낭독은 다르다. 소리를 내어 읽기 위해서는 문자정보를 받아들인 뒤 이를 다시 발성기관을 통해 세계로 내보내야 한다. 즉, 낭독에 수반되는 모드(mode)는 단지 시각/촉각에 국한되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발음과 관련된 정보처리가 일어나고, 필요한 구강 및 기타 안면 근육의 운동이 동원된다. 이는 낭독자의 몸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며, 묵독과는 전혀 다른 호흡의 패턴과 몸의 떨림을 발생시킨다. 그렇게 생산된 음성은 다시 낭독자 자신에게 청각정보로 돌아온다. 텍스트는 낭독자의 뇌와 발성기관을 경유해 다시 낭독자의 청각을 향한다. 낭독을 통해 텍스트는 시촉각에서 청각으로 변신하여 독자를, 그 주변 공간을 감싼다.
낭독모임을 하는 경우라면 이 목소리가 함께하는 이들에게도 전달된다. 높낮이와 떨림, 음색과 어조, 속도와 강약, 고유의 자모 특성 등 발성과 관련된 모든 특징들이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낭독자는 보고/만지고-말하고-듣고, 듣는 이들은 (보며)-들으며-(속으로 따라하며)-기억을 소환하고-상상을 발동시킨다. 소리는 공간을 다른 질감으로 채색한다. 사람들의 몸은 소리로 연결되고 동시에 의미의 연대체가 된다. 낭독의 공동체(communion)가 순식간에 생산된다.
이처럼 낭독은 문자가 몸을 거쳐 소리로 물화되는 과정을 수반한다. 이는 책의 글자를 시각/촉각을 통해 머리 속에서 처리하는 과정과는 엄연히 다르다. 결국 책을 조용히 읽는 행위와 낭독하는 행위는 사뭇 다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묵독의 속도에 희미해진 단어들이 또박또박 살아나고 기억과 상상을 위한 마음에 새로운 틈이 생긴다. 책은 낭독을 통해 새로운 미디어로 변신하며, 이는 사람과 책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공간과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읽는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공간은 새로운 장소로 탈바꿈된다.
책의 역사에서 광범위한 묵독 이전에 낭독이 주된 모드였음을 기억한다면 낭독모임은 새로운 트렌드라기 보다는 전통의 복원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의 소유와 그 지식에 대한 접근이 소수에 독점되지 않고 모두에게 열려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1:N 낭독과는 다른 권력과 정서의 리추얼이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덧.
나는 낭독하는 모임이 좋다.
성우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먼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