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면 단어 1,800개를 외워요

학습 관행의 '자연화', 그리고 상처와 울분, 체념에 관하여

by 가이아


오래 전 일이다. 학원에서 하루에 단어 100개, 주말에는 200개를 외우곤 했는데 어느 날은 시험 점수가 모자라 집에 가지 못했고, 배가 너무 고팠고, 원장선생님은 너무 무서웠고, 그게 트라우마가 되어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생각에 너무 아프다면서 발표 중에 눈물을 뚝뚝 흘리던 학생이 있었다. 수업 시간에 그렇게 우는 학생은 처음이어서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 아픔에 먹먹해져서 잠깐 얼이 나가 있었는데, 다른 학생 하나가 자신도 같은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아, 또 다른 아픔의 이야기가 나오려나 싶었다. 그런데 두 번째 학생의 말은 사뭇 달랐다. "그땐 너무 힘들고 괴로웠는데 지금 보면 그때 열심히 해서 영어가 단시간에 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후에 공부하는 게 좀 편했고요."


이 말을 듣고 생각이 복잡해졌다. 한 학생은 그 기억으로 여전히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두 번째 학생은 그 시간을 '잘 견뎌내고' 그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여러 번 밝혔지만 나는 마음을 살피지 않는 학습에 대해 비판적이고 그렇게 사람을 몰아부치지 않고도 영어 능숙도를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마다 편차가 있고 모두 같은 수준의 영어가 필요한 것은 아니기에 모두가 만족할만한 실력을 갖출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만족'이라는 것은 철저히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어서 개념 자체를 의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만족' 혹은 '충분함'을 정의하는 데 동원되는 담론이 어디에서 오느냐이다. 그것은 넓게 말하면 사회이지만 구체적으로는 영어가 갖는 교환가치의 촘촘한 제도화, 영어교육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들로부터 온다. 그리고 해당 담론의 구성에 아동의 목소리는 배제된다. 이는 철저한 성인중심주의(adultism, 아동에 대한 편견 및 차별을 동반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음)의 산물이다.


santi-vedri-O5EMzfdxedg-unsplash.jpg Photo by Santi Vedrí on Unsplash


일반화할 수 없는, 솔직히 좀 우습기까지 한 경험이 하나 있다. 영어교육을 전공한 '전문가'로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강연이 끝나고 한 학부모가 다가왔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영어교육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이 "그래서 이 시기에 어떤 학원을 보내면 아이한테 가장 도움이 될까요?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였다. 나는 모른다고 말했고, 조금 슬펐고, 조금 실망스러웠으며, 또 조금 당황스러웠다.


담론의 자연화(naturalization) 과정은 사람들 사이에 개념이 널리 퍼지는 지적인 과정으로만 파악할 수 없다. 무언가가 자연스러워지는 과정은 사람들의 마음에 갈등을 유발하고, 적잖은 이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것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을 '노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낙인찍으며, 그런 상태를 오래 지속시킴으로써 '다들 그렇게 사는 걸 뭐'라는 말을 일반화한다. 지금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교육적 관행들은 사실 그렇게 수많은 이들의 아픔과 상처, 울분과 체념에 기반한다.


중학교 초중반 두 주에 단어 1,800개를 외웠다던 두 학생의 이야기에 슬프고 화가 났지만 어떤 그룹에서는 "다들 그렇게 하는데 뭐. 시간 좀 지나면 괜찮아."라는 말 한 마디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된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지나온 이들 중 몇몇은 "그래도 그때 공부한 게 좋았어"라며 '좋은 결과'에 방점을 둔다. 어떤 학원이 좋은지 모르는 나는 종종 무력하다. '상처를 딛고' 뭔가를 이룬 학생들을 비난할 수도 없다. 나는 계속 원칙과 관점을 이야기할 뿐이고 그게 어떤 이들에게는 '현실을 모르는 선생'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살다 보니 어떤 면에 무력해야만 어떤 면에서 조금이나마 쓸모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력함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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