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각의 지식은 무지에 대한 수많은 더듬이를 달고 있습니다
공부를 할수록 앎은 커집니다. 이것은 지식의 양, 개별 지식간의 관계, 지식과 세계의 사태와의 조응, 이론에 기반한 실천 등의 영역에 두루 적용됩니다. 배움은 채웁니다. 앎의 뿌듯함으로 마음이 차오릅니다. 나는 조금씩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동시에 무지 또한 커집니다. 앎이 확장되면서 무지의 영역이 거의 무한대라는 사실을 자각합니다. 앎을 통해 세상과의 접점이 넓어질수록 절대적 확신은 사라집니다. 이해의 가능성과 함께 오해의 가능성 또한 커져갑니다. 앎이 '커진다'는 은유 또한 위험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앎이 확장된다'기 보다는 '무지에 대한 촉수'가 늘어납니다. 나는 좀 더 민감하고 약해집니다.
무지에 대한 자각에 의해 제어되지 않는 앎은 선입견과 폭력으로 쉽게 전화합니다. 신영복 선생의 말씀처럼 방향을 가리킴에 있어 떨림이 없는 나침반은 고장난 나침반입니다. 나는 언제나 떨려야 합니다.
그 와중에 다행스런 것이 있습니다. 알 수 없는 것들은 많아지지만, 무지의 영역은 끝없이 확장되지만, '아닐 것 같은 것'들에 감각은 분명 자라난다는 점입니다.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미심쩍은 것들, 그럴듯해 보이지만 치렁치렁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것들. 경계를 정한다면서 스스로가 차별의 벽이 되는 일을 감지하는 능력 말입니다.
아는 것은 산술적으로, 모르는 것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한 조각의 지식은 무지에 대한 수많은 더듬이를 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서 질문을 던지고 의문을 갖는 능(能)은 조금씩 성장합니다. 앎과 모름이 엮이는 '프랙탈'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영영 모를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진리를 더듬을 능력은 분명 자라난다는 것. 계속 회의하면서도 무지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 아주 가끔이지만 의심의 틈으로 들어오는 찬란한 빛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여기에 배움의 기쁨이 있습니다.
밤하늘의 별, 그 너머를 보는 나는 먼지보다 작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밤 하늘의 별을 담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히 비참하고 또 영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