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과 공존은 고도의 종합예술입니다
고백컨대 장애에 대한 나의 무지는 더할 수 없이 깊다. 평생 비장애인으로 별 문제의식 없이, 지극히 이기적으로 살아왔다. 이 편협함에 균열이 생긴 최초의 사건은 몇 해 전 극심한 허리 통증으로 길바닥에 쓰러져 있었던 15분 여의 시간이었다. 몇몇 행인들로부터 "괜찮냐?"는 질문을 받았고 내 의지로 일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웠지만, 그 경험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는지는 잘 모르겠다. 포용교육(inclusive education)에 대해 공부하면서 이런저런 글을 통해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지만 여전히 모르는 게 많고 충분히 아는 것 또한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안다. ('포용교육'이라는 용어가 여전히 비장애인 중심적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inclusive education'의 잠정적인 번역어로 사용하였다.)
오늘 공연장 접근성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깊이 깨닫는 것은 평등과 공존이 고도의 종합예술이라는 것이다. '종합예술'이라는 명명은 듣기 좋은 메타포에 그치지 않는다. 평등과 공존의 삶은 태도에서 시작될지 모르지만 그것을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은 (1)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2) 모든 상황과 가능한 시나리오를 면밀히 검토하며, (3) 그에 대해 치밀하게 대비하고, (4) 적절한 정보와 자원을 배치함과 동시에 (5) 분초 단위로 펼쳐지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역량과 전문성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사회적으로 '평등과 공존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 필요하다. 비장애인이 누리는 모든 것들을 장애인이 누릴 수 있도록 시공간을 디자인하고 제도를 정비하며 사회경제적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평등과 공존은 몇 가지 조항이나 '계몽', 선언이 아니라 사회의 질서를 세심하고 구체적으로 바꿀 때만 가능한 삶의 양식이며, 그렇기에 그 양식을 공유하는 일을 아주 어려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무지했던 그리고 여전히 무지한 나를 방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새로운 세대는 나처럼 무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태어나면서부터 하루하루 경험하는 바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의 공존'이나 '다른 이들과의 평등'이라는 개념을 공부하지 않고도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평등과 공존을 숨쉬었으면 좋겠다.
덧. 글의 동기를 제공해 준 <공연장 접근성 가이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