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시좌가 여는 세계에 관하여
1. '이것 저것'. 'this and that'. '여기저기'. 'here and there'. '지상에서 영원으로'. 'From Here to Eternity'. 인간의 언어는 대개 자신이 처한 곳을 시작점이자 중심으로 놓는다. 가까이 있는 '이것'을 먼저 이야기하고 이후 '저것'을 말한다. 처해 있는 '여기'를 먼저 말한 뒤 '저기'를 논한다. '지금'을 이야기한 후 과거나 미래를 꺼낸다.
2. 인간이 갖고 있는 이러한 자기중심적 관점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우리는 각기 다른 몸을 가진 존재이며, 몸은 단지 공간을 점하는 것이 아니라 입장과 관점, 기억을 담지하기 때문이다.
3. 중심과 주변은 단지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권력의 지형을 대변하는 메타포이다. '중심이 되는 인물'이 있고 그 주위를 맴도는 사람들이 있다. '인싸'가 있고 '아싸'가 있다. 도시의 정중앙이 아니더라도 'central business district (CBD)'의 이름엔 언제나 'center'가 따라붙는다.
4. 본능도 지배적 문화도 '중심이 되려는 자아'를 부추긴다. 안타깝지만 교육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5. 중심의 메타포는 높이의 메타포로 번역된다. 중심에 서려면 높이 올라가야 하고, 높이 올라가야만 중심에 설 수 있다.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는 가장 높은 사람이면서 물리적으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키 큰 사람은 키 작은 사람을 내려다 보고, 권력을 가진 이들은 권력을 가지지 못한 이들을 내려다 본다. '내려다 보다'에 '깔보다'의 의미가 섞여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어디에서 출발하든 한양은 '올라가는' 곳이고, 사회경제적으로 나아지는 일은 '개천'에서 '용'이 되어 '날아가는' 것이다.
6. <장애학의 도전> 첫 머리에 김도현 선생님은 시좌와 시야에 대한 시각 메타포를 제시한다. 중심의 시좌가 확보할 수 있는 시야와 변방의 시좌가 확보할 수 있는 시야가 다르다는 것이다. (첨부 그림 참조)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 더 많은 정보를 획득하고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다.
7. 이 같은 메타포에 대하여 '더 넓게 보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 내가 틀렸으면, 착각하고 있는 거라면 좋겠다.
8. 근데 개천에서 용이 나면 종종 괴물이 되더라. (feat. 봉준호의 영화 <괴물>)
9. 사회언어학 수업을 준비하면서 높이와 중심에 대한 강박에 대해 생각한다. 많은 공부가 그렇겠지만 이번 수업에서 계속 만나게 될 메타포들이다.
10. 나의 시좌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서울에서 평생 자란 '범생'의 한계는 너무나 뚜렷하고 그것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은 좁디 좁다. 알면서도 '권력, 다양성, 사회정의'를 중심으로 수업을 꾸리기로 한 것은 내 시좌의 한계가 학생들의 시좌의 한계가 되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