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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아 Feb 22. 2022

계획이 뭔가요?

그거 먹는 건가요?

몇몇 대학원생들의 진로 이야기를 듣고 생각에 빠져든다. 아무런 계획 없이 살아온 30여 년 세월. 그 전에도 그럴듯한 계획은 없었다. 어머니의 친구분이 '이런 학교가 있대. 며칠 후 마감인데 성우 원서 써보면 어때'라는 말에 예정에 없던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부모님의 교육예찬 덕에 사범대에 진학하고, 우연히 맡은 IT기반 교육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얻어 논문을 쓰고, 돈을 벌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되어 취직을 하고,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직을 하고, 동생들이 일을 하게 되어 훌훌 먼 곳으로 떠나고, 졸업 후 무계획으로 서울로 돌아오고, 다시 경제적인 압박으로 과하다 싶게 일을 하고, 몇 번의 번아웃 속에 위기감을 느껴 수업을 줄이고, 그러다가 제안을 받아들여 수필집과 몇 권의 책을 쓰고, 비정규직 연구자라는 역할에 대한 애증으로 이따금 논문을 쓰고, 가르치고 쓰는 일 외엔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어 여기까지 왔다. 잘 하고 못 하고는 모르겠고 그냥 하고 있다. 


Photo by Debby Hudson on Unsplash


지금도 특별한 계획은 없다. 계획을 갖기엔 부족함/알 수 없음 투성이다. 그럼 어떤가. 나는 여기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그것으로 괜찮고, 안 괜찮아도 뾰족한 수는 없어 둥글게 살려 한다. 길을 찾는 원생들에게 빠져들 수 있는 주제가, 노동을 소중히 여기는 일터가, 사려깊은 동료들이 나타나길 빈다. 별 것 아닌 나도 그 중에 하나였으면 좋겠다. 개강이 한 주 남았고, 다행히 설렘도 조금 남아있다. 누군가는 내게 '무계획의 계획'이라 말했지만, 무계획은 그냥 무계획인 것 같다. 내일 뭐 할지는 모레 가서 생각하기로 한다. 걱정은 말자. 모레의 회한은 글피에게 맡기면 되니까.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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