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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아 Apr 26. 2022

먼지에게 희망을!

바닥까지 내려가는 글쓰기, 그리고 교수-교사 간 위계의 탈식민화


1. '지배자'는 지배자대로, '피지배자'는 피지배자대로, '강자'는 강자대로, '약자'는 약자대로 탈식민화(decolonization)가 필요하다. 각각의 노력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적어도 응용언어학/언어교육에 한해서) 미국을 중심으로 탈식민화 논의가 가장 활발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복잡하다. 


2. 어제도 좋아하는 연구자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며 한국어로 글을 쓰는 일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는 데 마음을 모았다. 각자의 위치에서 의미있는 작업이 필요하겠지만 지금 우리가 발딛고 있는 곳은 한국사회이고, 한국의 영어교육과에서 가르치면서 한국의 언어교육에 대해 연구하며, 한국사회가 나아갈 길을 고민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적지 않은 연구자들 사이에 퍼져 있는 KCI 저널 논문이나 대중학술서에 대한 은근한 무시와 깔봄의 정서는 그 자체로 징후적이다. 사실은 지독하게 암울하다. 


3. 이런 문제의식에서 응용언어학 연구자들이 우선적으로 '벤치마킹'해야 할 곳은 '선진'학계가 아니라 한국의 몇몇 교사 커뮤니티라고 생각한다. 물론 교사들 간의 협업도 나름의 한계가 있지만 학부 때부터 지켜본 여러 교사단체 및 모임은 학술장보다 훨씬 더 활기차고 실천적이며, 상호돌봄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4. 다음 학기에도 대학원 수업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국 영어교육과 응용언어학의 탈식민화>를 주제로 잡을 것이다. 그 중 한 축으로 교수-교사 사이의 암묵적 위계를 깨는 일에 대해 깊게 논의하려고 한다. 교수-강사 간 위계, 교사-학생 간 위계 등도 중요한 주제이지만 영어교육을 하나의 장으로 봤을 때 지금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교수-교사 간, 교수-대학원생 간 위계이다. (현재의 암묵적 위계를 반영하기 위해 '교수'를 계속 앞에 썼다. 언어에 침투한 이데올로기를 보여주기 위해서. 맥락에 따라 자유롭게 순서를 바꿀 수 있는 권력을 모두에게 주는 것이 탈식민화의 작은 목표 중 하나라고 믿는다.)  


Photo by Dulcey Lima on Unsplash


5. 언젠가 문학에 대해 반짝 고민하다가 흐지부지된 적이 있다. (네, 그렇습니다. 특기는 '반짝', 취미는 '흐지부지'입니다.) 소설을 써볼까 하며 끄적거리다가 그만두기도 했다. 경험과 지식의 일천함과 더불어 글쓰기 역량의 부족이 이유였다. 사실 뼈에 사무치게 하고 싶은 이야기도 없었다. (하나가 있긴 한데, 그건 죽기 전에 남기고 가고 싶다. 일종의 '한풀이'로.) 무엇보다도 나는 '끝까지 밀어부치는' 글쓰기를 할 자신이 없었다. 갈등을 끝까지 밀어부치거나 '사악한' 캐릭터를 끝까지 밀어부칠, 사람의 심연으로 나를 밀어넣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밀어부치다가는 내가 깨질 것 같았다. 한 마디로 겁이 많았다. 


6. 여전히 소설을 쓸 역량도 용기도 없다. 하지만 연구자이며 교사로서 나 자신 안에 들어와 있는 수많은 힘에 대하여 '바닥까지 내려가 보는' 내러티브를 써보고 싶다. 지금 한 선생님과 이어가는 대화의 한 줄기도 탈식민화인데, 그 대화를 가치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스스로의 역사에 대해 솔직해져야 한다. 이전 프로젝트에서 쓴 글을 보면 나는 스스로를 수동적으로 합리화하려고 하는 것 같다. 나의 못남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어떻게든 이유를 대려 하고, 그럴만한 정황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금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7. 혹시 좀 더 내려가 바닥에 닿으면 다르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안에 얽혀 있는 힘들을 한 가닥 한 가닥 풀어내다 보면 내가 못나지도 잘나지도 않았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변명하거나 자랑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제대로 절망하다 보면 작은 희망이 보이지 않을까. 


8.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다시 들어간 지 어언 15년. 돌아보면 부끄러운 게 많지만 그래도 잘 한 일이 있었으니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한국어 글쓰기를 지속한 것이었다. 나는 오늘도 쪽글을 썼고 계속해서 써낼 것이다. 별것 아닌 먼지들을 생산하지만 그것들이 뭉쳐 어떤 패턴을 이루고, 그것이 작은 메시지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먼지에게 희망을!'을 외치면서.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사회언어학수업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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