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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아 May 01. 2022

영상 vs. 텍스트, 그리고 미디어 리터러시

'가장 효율적인 도구'를 넘어 '미디어 생태계'로 나아가기


1. 영상과 텍스트의 차이를 다각도에서 분석할 수 있지만 두 미디어가 수용 혹은 이해의 차원에서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2. 전형적인 영상은 3차원 물리적 세계의 재현(representation)이다. 따라서 유아기부터 영상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 영상을 보는(see) 능력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충분하다. 생물학적 본능에 기반한 역량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상을 '읽어내는' 능력은 전혀 다른 층위에서 작동한다. 이것은 텍스트 읽기와 마찬가지로 오랜 훈련이 없이 습득할 수 없는 능력이다.)


3. 이에 비해 글을 읽는 능력은 오랜 기간의 훈련을 통해 습득된다. 텍스트 읽기의 시작은 구어이다. 다양한 말소리에, 단어의 발음에 익숙해지면서 특정 언어를 이루고 있는 '소리의 단위들'에 대한 어렴풋한 자각이 생긴다. 이것이 문자교육의 초반, 유일하진 않지만 널리 시행되는 파닉스 교육에서 체계화, 정교화된다. 소리에 대한 감각과 문자의 작동원리에 대한 지식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해독(decoding) 역량이 키워지고, 이것은 텍스트를 막힘없이 읽어내는 유창성(fluency)의 발달을 추동한다. 텍스트를 정확하고도 끊김 없는 소리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은 텍스트가 말, 즉 구어의 영역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읽기습득 초반 아이들의 기쁨은 '흰 글자 위의 알 수 없는 흔적'이 자신의 삶의 구체적인 경험과 만나는 기적에서 비롯된다. 평소 말을 이해할 때 실시간으로 어휘와 문법이 처리되는 '마법'을 책을 읽으면서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4. 이런 면에서 미디어 자체에 내장된 성향이 존재함을 부인할 수는 없다. 유튜브 영상을 볼 때에는 텍스트를 읽어낼 때보다 수동적인 경우가 많다. 느긋이 즐기려 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텍스트를 읽어낼 때에는 능동적으로 문장에 의미를 부여하고, 장면을 상상하고, 행간을 채워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심층적인 독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미디어에 내장된 성향을 그대로 받아들일 이유는 전혀 없다. 영상을 '읽어내는' 활동을 통해 영상을 보는 사람을 비판적이고 능동적인 '독자'로 키워낼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영상을 분석하는 일은 텍스트 분석보다 복잡하다. 언어정보에 시각정보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6. 또 어떤 텍스트는 깊이 고민하지 않고 '술렁술렁' 넘길 수도 있다. 흔히 '시간을 때우기 위해' 웹소설을 보는 경우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하진 않는다. 대략적인 스토리라인을 파악하면서 큰 줄기를 잡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 것이다. 학술발표를 위해 논문을 읽는 것과 출근길 지하철에서 웹소설을 읽는 행위는 '문자를 읽어낸다'는 측면에서는 같지만 동원되는 심리적 자원이나 텍스트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 천지차이일 것이다. 


7.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서 가장 필요한 일 중에 하나는 각각의 미디어가 갖는 기본적인 특성들을 파악하고, 그것이 진공상태에서 발현되지 않는다는 점을 자각하게 하는 작업이다. "책이 영상보다 더 나은 미디어이다"라든가, "영상이 책보다 더 효율적이다"라는 식의 일반화된 진술을 거부하고 각각의 미디어가 갖는 내재적 성격이 사회문화적, 제도적, 정치적, 교육적 맥락에서 어떻게 다르게 발현될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일이다. 


8. 그런 면에서 세계문학전집을 읽는 것도 필요하지만 훌륭한 웹툰을 자신의 삶과 시대 속에서 독해함으로써 '나의 세계문학전집'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함께 경험하는 일이 중요하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과 '읽어내는 것' 사이에 꽤나 큰 차이가 있음을 인지하는 경험 또한 필수적이다. 짧은 문장 하나의 심연에 수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을 수 있음을 자각하고 이를 머리속에서 상상하고 시뮬레이션하여 '영상을 만들어내는' 역량 또한 소중하다. 


9. 그렇게 다양한 미디어 생태계를 가로지르는 가운데 이 시대에 필요한 삶을 위한 리터러시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학생들은 준비가 되어 있는데 평가가, 입시가, 리터러시를 점수로 환원하려는 문화가 이를 막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덧.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하는 것은 여전히 삶의 많은 영역에서 강고한 텍스트 중심주의, 아니 '성적을 위한 리터러시'와 맞딱뜨리기 때문인 것 같다. 계속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을 듯. 


#삶을위한리터러시 #유튜브는책을집어삼킬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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