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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아 May 07. 2022

우리가 '웃겨요'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페이스북 '웃겨요'의 심리학

1. 제 페이스북 포스트는 대개 '모노톤'입니다. '웃겨요'가 들어설 자리는 별로 없죠. 하지만 가끔 높은 비율의 웃겨요를 받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웃겨요'를 이곳에서의 작은 활력소로 삼는 건 저뿐이 아닌 듯합니다. 


2. 우리가 종종 '웃겨요'에 집착하는 이유에 대한 저의 가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웃겨요'는 상호성이 매우 강한 감정입니다. 자신의 즐거움이 상대에게 전달되고, 상대의 웃음은 다시 발화자의 웃음을 증폭하는 되먹임으로 작용합니다. 대면 상호작용 뿐 아니라 소셜미디어에서도 이런 측면이 드러납니다.


(2) '웃겨요'는 여러 감정 중 신체적인 반응이 가장 두드러지는 감정입니다. 대부분의 감정은 몸으로 표현되지만 웃음의 경우는 그 표현의 방식이 극적입니다. '포복절도'나 '배꼽 빠지게 웃었네'와 같은 표현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3) 페북의 특성상 진지한 글이 많습니다. 사람마다 비율은 다르겠지만 사회문제나 정치이슈 포스팅이 많은 상황에서 마음껏 웃을 수 있는 글은 일종의 '오아시스'로 기능합니다. 세상사에 대한 근심걱정, 이슈를 둘러싼 팽팽한 긴장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웃겨요'는 그래서 더욱 소중합니다. 


(4) 이런 의미에서 각 반응에 대한 초단평은 대략 이렇지 않을까 합니다.


- '좋아요'는 물론 좋지만 평범하고 (이건 사실 빈도의 영향이 크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좋아요'는 페북이 처음 출발할 때부터 존재하던 반응이었죠)


 - '최고예요(사랑해요)'는 특별하지만 은근하여 강렬한 신체적 감정을 수반하지는 않으며


- '힘내요'는 (한국어 번역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를 일단 제쳐놓고 말하면) 일부 사용자에게 위계의 감각을 작동시켜 불편함을 야기하는 일이 있고


- '화나요'는 함께 분노한다는 점에서 태도의 동질성을 확인하게 되지만 화낼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화나는 일이라 집착할 가치가 없고


- '슬퍼요'는 기본적으로 슬픈 일이니 함께해도 계속 슬픈 경우가 많은 반면,


- '웃겨요'는 조용히 건네는 마음을 넘어 함께 '포복절도'하는 룰루랄라 축제의 느낌을 줍니다.


덧. 느닷없이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저의 경우엔 감정 표현의 유형보다는 많은 면에서 신뢰하는 분들의 좋아요가 가장 강렬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Photo by Nathan Anderson on Unsplash


3. '웃음'이 갖는 특별한 지위는 학술적으로도 어느 정도 뒷받침됩니다. 일전에 한 논문을 살피고 메모한 내용입니다. 


"영어에서 가장 행복한(불행한) 단어는 무엇일까요? Isabel M. Kloumann 등의 PLoS ONE 논문에 따르면 첨부한 이미지와 같은 순위가 나온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연구자들은 구글 북스, 트위터, 뉴욕타임즈, 노래 가사 등을 말뭉치로 삼아 평가의 대상이 될 10,222 단어를 추출하고, 50명의 사람들에게 직접 개별 단어들의 '행복지수'를 표기하게 했습니다. 1은 가장 덜 행복한 단어, 5는 중립적인 느낌의 단어, 9는 가장 행복한 단어라는 기준을 주었죠. 결과는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빅데이터와 서베이를 결합하여 영어에서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단어를 추출한 것입니다.


laughter가 1위이고, happiness와 love가 뒤를 이었습니다. won이나 winning, victory와 같이 경쟁과 관련되는 단어들, laugh, jokes, smile 등 웃음과 같은 단어들도 보이네요. 행복과 가장 거리가 먼 단어 목록에서는 disease, illness, killers 등이 먼저 눈에 띕니다. 최하단으로 내려가서 긍정성이 가장 떨어지는 단어를 보면 death, murder, terrorism, rape, suicide, 그리고 terrorist 등이었습니다. 가장 부정적이라 평가된 단어들은 죽음, 살인, 전쟁, 질병, 테러, 고문 등과 관련되어 있었던 것이죠. 


참고로 laughter의 평균 점수는 8.5, terrorist의 평균 점수는 1.3이었습니다. (테러리스트가 1.3이라니, 웬만한 단어가 와도 '1'은 주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던가 봅니다.) 해당 논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Kloumann, I. M., Danforth, C. M., Harris, K. D., Bliss, C. A., & Dodds, P. S. (2012). Positivity of the English language. PloS one, 7(1), e29484.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029484


4. 여러분들은 주어진 단어들의 긍정성(positivity)을 어떻게 평가하시겠어요? 시험처럼 주어지면 어떻게든 답을 하겠지만,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떤 단어도 완전히 긍정적이거나 그저 부정적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웃으면서도 씁쓸할 때가 있고, 사랑이 가장 쓰라린 단어일 수도 있지요. 심지어 한 집단에서 'terrorist'로 낙인 찍은 사람도 다른 집단에서는 긍정적 인물로 평가되기도 하니까요. 언젠가 썼듯 세월이 흐를수록 '양가감정(兩價感情)'이나 '다가감정(多價感情)'은 예외가 아니라 기본적인 정조가 되어가는 듯합니다. 


5. 암튼, 그런 면에서 누구도 차별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주시는 분들께 감사합니다.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한 세계이지만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는 오늘을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인지언어학이야기 #삶을위한영어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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