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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아 Jun 07. 2022

그래도 책이다?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잡감


미디어 리터러시에 관하여 엄기호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를 두서없이 정리해 본다. 


1. 책을 냈으니 해석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 되었다. 그럼에도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삶을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의 문제의식이 "그래도 책이 최고지"로 수렴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예를 들어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래서 리터러시를 논의할 때 중요한 것은,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하느냐 영상을 봐도 되느냐가 아닙니다. 그 무엇을 하든, 이것들을 통해서 타자의 세계에 대한 이해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죠. 타자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은 타자의 세계가 나의 세계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하죠. 그러지 않고 너무나 쉽게 타자의 삶에 대해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이건 너무나 무례한 태도예요." (엄기호, 173쪽) 


<유튜브>의 내용이 책을 중심으로 한 텍스트 리터러시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지만 책 전반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삶을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이지 "결국 책이다"는 아니다. (책에서도 간접적으로 밝혔듯 텍스트 리터러시 논의가 많은 것은 두 저자의 삶의 궤적과 전문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 그럼에도 저자들의 주장이 어떤 미디어를 활용하든 같은 내용을 전달하면 된다는 건 아니라는 점 또한 강조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다른 미디어는 다른 뇌와 다른 몸을 구축하기 때문이다. 다시 책의 구절을 인용한다. 


"텍스트가 사유를 촉진하는 방식과 영상이 사유를 촉진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말씀드렸는데, 미디어가 변화시키는 건 결국 몸이 아닐까 싶어요. 매체의 사용이 몸의 일정한 움직임을 만들고, 이것이 쌓이면서 몸의 반응 패턴으로 자리 잡는 거죠." (김성우, 141쪽)


결국 저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명확하다. '삶을 위한 리터러시'로 가는 길은 다양할 수 있지만 절대 그 모든 길이 같다고 '퉁치지' 말자는 것이다. 


3. 요즘 홍수처럼 쏟아지는 키워드 중에 '미디어 리터러시'가 있다. 필자도 이 용어를 종종 사용한다. 그런데 이 용어가 너무 커져버려서 미디어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미디어 사이의 차이를 지워버리는 식으로 작동할 때가 있는 것 같다. 용어의 추상성이 커지면서 구성요소 간의 차이와 관계에 대해 쉬이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Photo by Kenny Eliason on Unsplash


최근 진행하고 있는 연구에서 주의 깊게 살피고 있는 현상을 예로 들어 이 점에 대해 논의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수업시간에 사용하는 파워포인트가 있다고 하자. 이걸 학생들에게 디지털로 배포하는 것과 프린트해서 나누어 주는 것, 그리고 배포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의도적으로 내용의 일부를 삭제하고 줄 수도 있겠다. 


이 중 배포하지 않고 강의하는 경우와 동일한 파일을 배포하는 경우를 살펴 보자. 방금 필자는 '동일한 파일'이라고 썼다. 하지만 이 두 양태의 미디어를 사용한 수업을 '동일하다'고 할 수 있는가? 교사가 독점하는 파일과 학생들에게 배포된 파일이 '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아니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위에서 언급했듯 다른 미디어는 다른 몸을 또 다른 뇌를 구축한다. 그것이 완벽히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다양한 차이 중에서 세 가지만 이야기해 보려 한다. 


첫째, 학생들과 미디어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교사가 프로젝터로 슬라이드를 보여줄 경우 해당 프리젠테이션 진행의 전권은 교사에게 있다. 일반적으로 교사는 첫 번째 슬라이드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슬라이드까지 순차적으로 나아가며 설명을 덧붙인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배포된 프리젠테이션 파일은 학생들이 의도한 대로 탐색될 수 있다. 교사가 슬라이드 3을 다룰 때 학생은 슬라이드 7을 볼 수 있고, 교사가 '아까 설명했듯이'라고 말할 때 학생은 해당 슬라이드로 이동할 수 있다. 


둘째, 교사가 진행하는 프리젠테이션은 기본적으로 아날로그 모드이다. 교사의 노트북 속 파일은 디지털일지 모르지만 스크린에 나타나는 내용은 조금 큰 대자보와 다를 것이 없다. 교사가 패드를 활용해 그 위에 필기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학생은 그럴 수 없다. 배포된 프리젠테이션 파일을 활용하는 경우 이 모든 것이 달라진다. 디지털 파일로서의 양태는 실로 많은 것들을 가능케 한다. 종종 우스개 소리로 말하는 '쓰기의 혁명 CTRL+C CTRL+V'를 포함해서 말이다. 


셋째, 수업 전 배포된 파일은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태도를 바꾼다. 이 점은 길게 부연하지 않아도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다. 


요는 완벽히 같은 내용을 담은 미디어라 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행동을 유발할 수 있으며 그것은 특정 시공간에서의 개인의 몸과 태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미디어의 경우 그 차이는 더욱 클 수밖에 없지 않은가? 


4. 누군가 "여전히 책인가?"라고 묻는다면 여전히 텍스트 리터러시가 중요하다고 답하겠다. 정보매체로서 책이 가지고 있는 장점, 긴 텍스트를 읽어내는 몸이 갖추게 되는 윤리적 태도, 행간을 음미하는 행위에서 얻게 되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은 실로 소중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소위 '멀티리터러시(multiliteracies)'의 시대의 교육자로서 '결국 책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책임방기라고 여긴다. 우리가 말글을 삶과 엮어 제대로 가르친 적이 있었는가 하는 뼈아픈 반성은 남지만 그것이 변화하는 미디어 생태계를 애써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얼마 전 한 고등학교에 리터러시 관련 강연을 다녀왔다. 책을 꽤나 좋아한다는 학생 스물 다섯 중에서 "유튜브보다 책을 더 좋아한다"고 말한 학생은 다섯에 불과했다. 나름 책 좀 읽는다는 학생 중 5분의 1만 책을 가장 선호하는 매체로 꼽은 것이다. 이 비율이 아쉽기도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삶을위한리터러시 #미디어리터러시 #유튜브는책을집어삼킬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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