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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 설 Aug 25. 2022

홀로 하는 사랑, 혼자 견디는 아픔

-허수경 시집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 지성사, 2021)을 읽고

『혼자 가는 먼 집』은 시인 허수경이 독일로 건너간 해에 발간된 시집이다. 갑작스레 독일로 건너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해당 작품으로 당시 그녀의 마음을 조금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어둡고 외로웠다. 사랑에 대한 미련과 버려짐에 대한 비통함이, 남은 생에 대한 아쉬움과 죽음에 대한 자의식이 시(詩) 곳곳에서 느껴졌다. 어둡고 스산하고 우울하지만, 사랑의 서정성 또한 잘 표현하고 있어서 더 애 닳고 아팠다. 시는 그렇다. 함께 보고 함께 느껴지는 것. 그것은 시가 가진 가장 위대함이다.     

 

  넌 왜 날 버렸니? 내가 언제 널?
살아가는 게, 살아내는 게 상처였지,
별달리 상처될 게 있다면 지금이라도 떠나가 볼까,
캐나다? 계곡? 나무집? 안데스의 단풍숲?

「서늘한 점심상」 中     


 책을 읽기 전 저자에 대해 알아보는 버릇, 참 나쁜 버릇이다. 글을 선입관을 갖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난 책에게 수없이 물었다, 독일로 건너간 이유를. 그리고 참 나쁘게도 고작 몇 글자만으로 그것은 사랑 때문이라고 잠정 결론 내렸다. 이별은 그녀에게 살아가기 힘든 무형의 고통이었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생채기였을 것이다. 하늘 아래 숨쉬기조차 힘든 그녀가 선택한 것은 결국 독일이었을까.  

아픈 사람은 그 아픔을 숨기기 힘들다. 얼굴에, 생활에, 표현에 모두 드러난다. 그녀의 지병이 시작된 게 집필을 시작한 즈음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너는 왜 위胃가 아프니 마음이 아프지 않고”(「사랑의 불선不善」), “살아내려는 비통과 어쨌든 잘 살아남겠다는 욕망이”(「먹고 싶다······」) 아프지 않고 살아갈 수 없음에도 살려는 의지가 보인다. 사랑도 떠나가고 내 육신까지 떠나감이 어찌나 외로울까.      


  아련히 올라간 마음의 끝을 쫓아 몸으로 빗장을 삼은 아버지가 아팠습니다
아픈 아버지의 아련한 몸이 세계의 나무처럼 누각 끝의 풍경을 건드리고
풍경은 물안개를 건드리고
긴긴 세계의 경계를 만들어내는 것을
나는 망연히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저 누각」 中     

 

 아버지의 영혼을 노래한 시(詩)는 그 마음이 너무도 절절했다. 그 혼이 풍경을 건드리고, 물안개를 건드리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만들어버린다. 그 죽음을 망연자실 보고만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글로 그려내면서 그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잔상과 그 속에 머무른 그림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움직임으로 울리는 풍경의 소리로 아버지를 연상한 그녀의 글에서 그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산은 머리를 풀며 안개의 자궁 속에 숨고”(「가을 벌초」)에서 작가는 아버지를 안개로 비유하고 있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안개. 그리고 안개는 곧 다시 태어날 것처럼 자궁 안에 숨죽여 있다.


 그녀의 글에 등장하는 은유, ‘자궁’, ‘봄’, ‘아가씨’. 태초와 시작, 젊음을 상징하는 것들이다. 그녀가 얼마나 인생을 붙잡고 싶었는지 저 단어들만으로도 느껴진다. 『혼자 가는 먼 집』은 글이 인생의 여운과 상처를 얼마나 위대하게 표현하는지 알게 한다. 그것은 어느 문학작품보다 詩가 가진 힘이 아닐까. (「가을 벌초」)의 “자궁”은 환생으로라도 다시 태어나 아버지를 보고 싶은 그리움의 또 다른 표현이다. 허수경 시인은 글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혼자 가는 먼 집』에 쏟아부었다. 그래서 생각할 것이 많고 어떤 작품보다 그녀의 숨이 잘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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