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 설 Jul 28. 2022

깊은 사색은 명작을 만든다

-이승우『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마음산책, 2019)를 읽고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목차와 책머리 글이다. 작가가 가장 심사숙고해서 쓰는 글이 첫 문장이다. 그렇게 1막이 완성되면 또 제목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 두 가지는 책 안에서 작가의 의도가 가장 정확하게 드러나 있는 부분이다. 책머리 글을 읽으면 작가의 문체를 빠르게 눈치챌 수 있고 따라서 내 성향에 맞는 책을 잘 고르는 방법이 된다.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의 저자는 현직 문예창작과 교수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던, 또는 문학도를 꿈꾸는 이들이 쉽게 범하는 창작의 오류를 책머리 글에서 부드럽게 지적하고 작가가 생각하는 모범답안을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이것이 내가 해당 도서를 선택하게 된 이유다.

  

 글을 잘 쓰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먼저 생각해야 할까. 본문의 상당 부분에서 작가는 플롯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건과 사건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작가의 의도가 다르게 해석되고 이야기의 전개 방식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인물의 묘사나 심리상태까지 달리 표현되기도 한다. 비슷한 에피소드를 어떻게 나열하느냐에 따라 소설의 흐름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플롯은 소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간접적으로 퇴고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어쩌면 본문의 소제목인 「소설을 다 쓰고 소설을 써야 한다」에 어울리는 내용이 바로 퇴고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작품의 완성은 퇴고의 희생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하는 필자로서는 직접적인 언급이 많이 없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본지를 빌려 퇴고의 중요성에 대해 짤막하게 거들자면, 수채화의 밑그림이 플롯이라면 밑그림에 색감을 넣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퇴고다. 이를테면, 소설 하나를 완성했다고 치자. 여기까지가 밑그림이다. 퇴고 없이 소설을 완성했다는 것은 전체적인 밑그림만 그렸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작가는 색채를 넣기 위해 원고 마감 전 본인의 작품을 첫 번째 독자가 되어 읽을 것이다. 작품 완성의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지만 반대로 퇴고의 첫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런웨이에서는 가장 역량 있는 모델이 피날레를 장식한다.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소설 완성의 피날레는 퇴고다. 완벽한 퇴고는 힘들다. 하지만 신중한 퇴고는 완벽한 소설 탄생의 서막이 될 것이다.

 

 소설의 소재를 구상하는데 작가의 경험은 아주 중요한 기초가 된다. "소설은 육체다" 「강을 건너는 이야기를 써라」라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경험이라고도 얘기할 수 있다. 육체는 경험이 축적되며 성장하고 정신은 성장된 경험으로 더 많은 소재를 만들어낸다. 빠르게 성장해 가는 고속화 시대에서 다양한 소재를 경험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경험하기는 힘들다. 느리게 걷고, 느린 일상에서 찾아오는 여유는 사색을 선물하고 사색은 또 다른 구체성으로 소설을 쓰게 한다. 우리에게 너무나 유명한 김춘수의 『꽃』이라는 작품은 작가의 눈앞에 있던 꽃에 대한 깊은 사색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깊은 사색은 명품을 남긴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소설을 ‘쓰는 작업’은 사색의 미완성을 그리는 예술이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