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전 『죽은 자의 집 청소』 내용을 떠올리며 제목을 궁리했다. 그런데 도무지 떠오르는 말이 없다. 이미 죽은 자에게 어떤 위로의 말이 필요할까. 고독사가 대부분이고, 유족도 없는 망자에 대한 애도는 그저 마음을 담은 묵념이 최선이 아닐까 싶다.
작가 김완은 대학에서 시(詩)를 전공한 문학도이다. 그래서인지 처음 몇 장은 문체가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무척 감상적이고, 함축적인 의미를 담은 문장도 많이 보였다. 이는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그 의미를 곱씹어볼 수 있는, 또 현장에서의 알 수 없는 망자에 대한 연민이나 애도를 더욱 깊게 느끼게 하는 화법이 되고 있다. 그래서 글을 읽는데 더 심취할 수 있었다.
결혼 적령기가 늦어지고, 비혼주의 신념을 가진 젊은이들도 많아짐에 따라 고독사의 확률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지금의 추세라면 2035년엔 1인 가구가 전체 인구의 34%를 넘길 것이라는 조사 결과(출처;KBS 한국인의 고독사 2부작)는 무시할 수 없는 비율이다. ‘고독사’라 함은 나이 지긋하신 노령층에 국한된 뜻이라 해석하고 있었는데, 20~30대도 상당하다는데 놀라웠다. 1인 가구의 증가세에 대한 조사 결과를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특수 청소를 한다고 해서 꼭 고독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장 강박 장애로 인한 쓰레기집 청소도 있었다. 매체에서도 가끔 보도되는 쓰레기집, 개인적으로 해당 사건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정신장애에 있다고 본다. 그 정도의 저장강박증이라면 정신장애의 일종으로 해석해야 맞다. 저장하지 못하면 생기는 불안장애에서 오는 강박증. 쓰레기집이 된 원인을 해소하지 않으면 그 집은 영원한 쓰레기집으로 반복 재생될 것이다.
돈이란 전산상에서는 숫자에 불과하고, 현실 생활에선 그저 일정한 크기로 썰어놓은 얇은 종잇조각일 뿐이지만 진실을 자백하길 강요하는 몹쓸 부적이라도 된 것처럼 그 앞에서 수많은 인간이 무릎을 꿇고 저열한 속내를 숨기지 못한다.
그는 드물지 않게 살인사건 현장도 작업장이 된다고 한다. 특히 치정살인의 원인은 대부분 돈이라고 말하고 있다. 돈 앞에서 치열할 수는 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며 정당하게 경쟁함에 누구든 이의를 제기할 자는 없다. 하지만 저열할 필요는 없다. “진실을 자백하는 몹쓸 부적”은 차라리 고마울지도 모르겠다. 정말 무서운 것은 진실이 아니라, 저열함 뒤에 숨겨진 거짓까지 강요하는 부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돈은 자본주의의 상징이긴 하지만 살인 위에 표적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고독하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고령화되면서 외로워지고 있다. 혹시 지금 당신이 외롭다면 그 외로움을 만천하에 알려라. 분명하게 해두어야 한다. 우린,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