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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 설 Jul 26. 2022

그 아이 이야기

情人

 출산 후 육아휴직의 끄트머리를 달리고 있던 1월의 어느 날. 습관처럼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오늘의 이슈와 흥밋거리를 찾아서 실시간 검색을 확인하고 있었다. 지금 어렴풋이 기억하기로 거의 1위부터 6위까지 해당 사건의 관련 검색어로 도배되어 있었다. 전날 모 시사프로그램에서 당시 큰 이슈였던 그 사건을 다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파장은 거셌다. 공중파, 지상파 할 것 없이 해당 사건을 보도하고 논평하기도 했다. 가뜩이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심신이 힘든 와중에 가히 충격적인 뉴스까지 접하니 얼마간은 감정이 늘어져서 많이 힘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양평으로 향했다. 양평은 그 아이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나는 아들만 둘이다. 여자아이들의 아기자기하고 분홍분홍한 옷가지만 봐도 가능성 없는 셋째를 생각하게 될 정도로 딸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더 긴장되고 떨렸는지도 모르겠다. 꽃이라도 들고 가야겠단 생각에 대형 할인마트를 들렀는데 형형색색의 아동복이 눈에 들어왔다.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아.. 저, 여자아이 옷을 찾고 있는데 예쁜 원피스 있을까요?”     


 점원은 연분홍색 망사를 덧대어 화려한 스팽글로 장식을 한 셔링이 가득한 반짝이는 예쁜 드레스를 권해주었다.      

 

 “신상품이에요. 겹겹이 덧대어 있고 속치마도 있어서 춥지 않아요. 여자아이들한테 요즘 핫한 상품이에요. 이걸로 하시겠어요? 선물하시는 건가요? 포장 필요하세요?”

 “아뇨. 딸 입힐 거라..”     

 

 나도 모르게 '딸'이라고 말해놓고 당황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점원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수없이 쏟아지는 뉴스를 보고 종일 그 아이를 생각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좋은 구두를 신으면 좋은 곳으로 간다는 어느 노래 가사가 불현듯 생각나 내친김에 구둣가게도 들렀다. 세상 화려한 꽃분홍 신들이 가득했다. "어쩜 하나같이 다 분홍색인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여자아이들이 핑크만 찾아요. 찾으시는 건 따로 있으세요?”

 “그냥.. 저는 잘 볼 줄 몰라서.. 가장 화려한 걸로 주세요.”     


디자인을 얘기한 것도 아니고, 부츠인지, 구두인지, 운동화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가장 화려한 걸 달라니, 점원이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그래서 냉큼 선물용이라고 둘러대 버렸다. 점원이 골라 준 신발은 발등에 끈을 두르는 전형적인 여아 신발이었다. 분홍색에 아크릴 큐빅으로 꽃장식을 해 귀여웠지만 화려했다. 정성스럽게 포장을 한 구두를 들고 마지막으로 꽃가게로 향했다.     


 “수목장에 들고 갈 건데 국화는 말고요. 예쁜 꽃다발 하나만 만들어주세요.”

 “수목장은 대개 조화를 많이들 해요. 생화는 짐승들이 향을 맡고 땅을 파기도 하거든요. 여긴 조화는 없고요.”

 “아, 그런가요? 생화하고 싶은데..”

 “수목장 관리인이 있으면 생화 놓았다며 말씀하시고 관리 부탁하시면 될 거예요. 어떤 꽃 원하세요?”     


 그렇게 예쁜 꽃과,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줄 꽃신과, 예쁜 드레스를 안고 차에 올랐다. 평일 오전 11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도로는 한산했고 양평까지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근데 수목장까지 올라가는 길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경사가 가파른 것도 문제겠지만 전날 폭설이 내린 터라 몇몇 조문객들은 언덕 밑자락에 주차를 하고 그 가파른 눈길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먼저 온 조문객들이 그전에 온 조문객들의 수많은 꽃다발과 선물들을 정리하고 있었고, 한쪽에선 행여나 조문객들 사고 날까, 종종걸음으로 아스팔트 위에 염화칼슘을 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정오에도 해가 들지 않는 음지에 잠들어 있었다. 음지에도 잘 자라는 목수국이라지만 얼어붙은 땅을 보니 마음이 더 힘들었다. 아이를 기리는 소품들이 즐비했고 내가 준비한 것들도 그중에 섞였다. 그리고 어느 마음 좋은 엄마가 남기고 간 글이 눈에 띄었다.     


-아이를 생각해주시는 고마운 마음 잘 헤아리고 있습니다만 이곳에 음식물을 놓고 가시면 들짐승들의 좋은 먹잇감이 됩니다. 이곳은 사유지입니다. 훼손되지 않도록 음식물은 뿌리거나 놓고 가지 마시고 갖고 가주시길 바랍니다.-


생전 안면 없는 아이를 보고 목놓아 울었다. 억울한 영혼을 달래주듯 뒤늦게 올려진 선물들을 보니 울지 않을 수 없었고 이렇게 죽어가는 아이들이 어딘가에 또 있을 거란 생각에 목이 잠겨 울었다. 그렇게 얼마를 울었을까 위에서 꽃다발을 한데 모아 정리 중이던 또 다른 엄마가 나에게 위로를 보낸다.     


 “너무 울지 마세요. 하늘에서 아이가 더 슬퍼해요.”     


그녀는 말은 그렇게 해놓고 같이 울고 있었다. 그리고 무료 수목장이지만 엄연한 사유지임에 개인 단체에서 나와 관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렇게 먼저 간 아픈 영혼에 수많은 엄마는 명복을 빌어주고 있었다. 어느덧 이슈가 조금씩 가라앉고 내 마음도 활기를 찾아가고 있을 무렵, 친정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 딸, 뭐해?”

 “뭐하긴 내일모레 복직이라 아이들하고 최선을 다해 놀아주고 있지.”

 “엄마가 아직도 갱년긴가 봐. 우울증인가?”     


 10여 년을 갱년기인지 우울증인지 헷갈려하시는 친정엄마를 모시고 답답할 때 가면 좋은 곳을 안다며 행선지는 비밀로 한 채 아이들과 또다시 양평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엄마의 푸념과 아직 결혼도 못 한 아들 걱정을 들어주느라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수목장 근처를 달리고 있었다. 그때 엄마가 논밭 가득한 창밖을 보시더니 한 말씀하신다.     


 “어디 가는 건데?”

 “우리 딸한테 가요.”     

 화들짝 놀란 엄마, 태연한 딸. 엄마는 으레 보육원 같은 곳을 생각하셨나 보다.     


 “그럼 좀 편한 옷으로 입고 올 걸 그랬다. 미리 얘기를 해주지. 뭐 결연 후원하는 곳이야?”

 “아니.. 그냥 좀 사연이 있어요.”     


 수목장이 처음인 엄마는 산꼭대기의 수목장을 맘에 들어하셨고 여긴 그냥 시설물이 아닌, 수목장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그 아이의 사연도 말씀을 드렸다. 엄마는 말없이, 하염없이 우셨다. 괜히 모시고 왔나 보다. 한참을 우신 엄마는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천벌 받을 거야.”

 “엄마.. 이 아가 불쌍해.”     

 

 함께 온 이젠 제법 사회 뉴스도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첫째가 다가와 거들었다.     

 

 “어. 불쌍하지? 나중에 엄마가 이 아이 가짜 엄마 만나면 막 때려줄게.”

 “어? 엄마. 그건 나빠. 이 아이도 그렇게 죽었다며? 폭력은 나쁜 거라면서 엄마는 왜 폭력을 쓰려고 해? 그럼 그 가짜 엄마랑 똑같이 나쁜 사람인 거잖아.”     


 아이의 말에 난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그 분노는 나를 위한 것이었다. 하늘에서 예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 천사들의 마음은 아니라는 걸 난, 거꾸로 아이에게 배웠다.     

 

 “우리 손주가 애미보다 말을 잘하네.”

 “엄마가 미안해. 그 생각은 못 했네.”     


 조문이 끝날 즈음 주변 묘목도 살펴보았다. 고작 9개월을 살다 간 아이의 묘목과 약 60여 년은 함께 사셨을 법한 부부의 묘목도 있었고, 미혼인지 기혼인지 모를 29세의 묘목도 있었지만 그들의 자리엔 그들을 사랑했던 생전 지인들의 발자취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 아이는 오로지 혼자였다. 그 흔적들이 더 마음을 후벼 팠다.


벌써 그 아이가 떠난 지 2년이 되어간다. 복직 후 바쁜 탓에 이후 한 번도 못 가봤지만, 그 자리엔 지금 이 계절, 꽃이 피었을 것이고, 잔디도 자랐을 것이다. 내가 봤던 겨울보다는 따뜻할 것 같아서 안심이다. 자꾸 그 딱딱했던 맨 눈 바닥이 마음에 사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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