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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 설 Jul 26. 2022

공황장애

나만 위로할 것

“심장이 너무 심하게 뛰어요. 어떤 날은 체크해보면 140이 체크가 되기도 하고요.”

“그럴 수 있어요. 너무 신경 쓰실 건 아닌 것 같은데?”


 너무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돌팔이 정신과 의사 말에 난 그저 ‘기립성 저혈압’ 정도라 믿고, 내 증상을 철저히 외면했다. 만원 버스를 탈 때면 식은땀이 목덜미부터 타고 내려가면서 머리털이 쭈뼛쭈뼛했고, 청각이 둔해지며 주위 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지며 이인증이 시작된다. 위험한 건 앞이 캄캄해지고 심장이 사정없이 펌프질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사지에 힘이 풀린다. 전형적인 공황장애 증상이다. 이 증상은 오래가지 않는다. 깊게 호흡을 하고 20분 여가 지나면 자연적으로 소멸한다. 증상이 가볍게 시작되면 난 다음 역에서 내릴 준비를 한다. 특히 대중교통이나, 엘리베이터는 증상을 악화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처음 ‘공황장애’를 의심받은 건 내과에서였다. 내가 다니는 곳은 의약품을 다루는 회사여서 전 직원 매년 건강검진이 원칙이다. 그날도 1년에 한 번인 건강검진이 무척 귀찮은 날이었다. 형식적인 검사를 시작 전, 자동혈압계에 팔을 맡기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 검사지를 보고는 간호사가 10분 휴식 후 다시 하란다. 10분 후엔 더 높게 나왔다.  


 “부정맥 검사해 보셨나요?”


  컴퓨터 모니터엔 내시경 하면이 보이는데 의사는 전혀 다른 말을 한다. 부정맥이 더 급했던 모양이다. 난 내 증상을 설명했다. 수년 전 정신과 의사에게 전달했던 증상과 더불어 추가된 증상까지 빠짐없이 나열했다.


 “혹시 신경정신과 상담받아보셨나요? 아래층에 신경정신과 있어요. 전문의 상담을 권해드립니다.”


 그날 난 10년 만에 정신과를 찾았다. 정신과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전문의가 세 명이나 있는 병원임에도 대기 중인 사람들은 많았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부터 아직 말을 떼지 못한 어린아이까지 연령대를 가리지 않았다. 그중 한 사람은 계속 한 단어를 반복적으로 외우고 있었다. 자폐였다. 옆엔 노모가 계산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계속 중얼거렸다. ‘우산, 우산, 우산, 우산....’ 그날 비는 오지 않았다. 우산을 기억할 만한 일이 외출 전에 있었으리라.


 “전미선님, 오늘 초진이시죠? 초진은 시간이 조금 걸려서요. 뒤에 오신 약만 받으시는 두 분만 먼저 진료 볼게요.”


 ‘그 정도 아량은 베풀 수 있어요.’라는 아주 선량한 미소로 답을 대신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데 이렇게 마음이 힘들고, 정신이 아픈 사람이 많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서글펐다. 대기자 중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통화 중에 ‘하하호호’ 세상 행복한 사람도 보였고, 부부가 나란히 손을 잡고 와 개인적인 얘기를 조용히 나누는 사람도 있었으며, 홀로 휴대전화 화면에 열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모두 겉보기엔 무척 건강해 보였다. 다만 마음의 병이 한 번씩 그들의 삶을 아프게 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불안하다. 입시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학생들의 불안감, 내 아이가 올바르고 건강하게 자라주길 희망하는 데서 오는 불안감, 100세 시대에 퇴직 시기의 압박에서 오는 불안감 등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멍들어있다. 사회가 치열해지고, 사건 사고가 미디어를 통해 자극적으로 노출되면서 받는 심리적인 부작용도 큰 역할을 했으리라 보고 있다. 지난 2021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공황장애의 증가세는 약 55%, 전 연령대에 거쳐 증가하는 특징이 있음을 강조한다. 각계에서는 다양한 원인을 분석하고 있지만, 한의학과 양의학의 공통된 입장은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데 있다. 자본주의적 경쟁심리가 낳은 최악의 병, 스트레스. 난 그 스트레스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일단, 약 드셔 보시고 일주일 후에 다시 경과를 좀 봅시다.”


 병명을 듣지 못했다. 다만, 내가 먹고 있는 약은 처방전이 없었고 병원에서 약을 받아왔다. 내가 무슨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했다. 그것은 내 권리였다. 약에 음각되어있는 기초정보로 약을 검색했다. 곧 모니터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불러냈다.

 <불안장애의 치료 및 불안 증상의 단기 완화>

 <성인 및 소아 강박 장애의 치료, 공황장애의 치료>

 <발작성 심방세동, 동빈맥, 협심증>


 일주일 후 병원에 다시 내원했을 때 난 의사에게 물었다. 약에 대해 검색을 하였고, 검색된 약에 의하면 난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 같다. 내 생각이 맞느냐고 물었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나의 공황장애 증상은 10년을 넘기고 있었다. 10년째 가벼운 광장 공포증과 공황발작을 겪는 것이다. 공황장애는 겪고 있는 환자마다 증상이 다르고 임상에 반응하는 속도도 다르다. 때문에 환자에게 맞는 약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난 시간이 흐를수록 증상이 진화하고 있고, 처방도 그에 따라 바꿔줘야 하는 통에 아직도 나에게 표적이 되는 약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평생 찾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공황장애의 근본적인 원인인 스트레스를 약으로 다스릴 수는 없다. 수많은 정보를 검색해봐도 스트레스만을 해소해주는 약은 지금 시대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스트레스를 완화해주면서 부가적인 증상을 효과적으로 개선시키는 것뿐이다. 21세기를 살면서 스트레스를 빼고 삶을 논할 수 있을까? 수없이 울려대는 전화에 대응하고, 하루에도 많게는 너덧 개의 보고서를 쓰며, 그 보고서를 제출하면 돌아오는 상사의 또 다른 요구사항은 그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의 온상이다. 스트레스는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필수 불가결한 대미지 같은 것이다. '두잇서베이 리서치'에서 제공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황장애를 겪는 직장인들의 34%가 업무 관련 스트레스를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업무가 주는 스트레스와 수직적 인간관계에서 오는 대인관계 스트레스 지수까지 합산하면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71%이다. 직장 자체가 스트레스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으로는 취미활동이 48%로 압도적 1위였고, 효과적인 방법으로는 운동이 1위로 41%, 취미활동이 36%로 2위를 달리고 있었다. 난 설문지의 결과를 보고 대한민국 사람에게 연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OECD 가입국 중 가장 일을 많이 하는 나라로 2020년 기준 대한민국이 3위다. 건강한 자아를 위해 얼마나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지 결과만으로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취미활동이 정신장애의 일종인 공황장애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문득 그 연관성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세로토닌'.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은 우울증을 치료하는데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호르몬제이다. 인간의 감정, 수면, 각성을 기능하는 신경전달물질인데 이것의 공급이 부족하면 우울증과 관련된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세로토닌을 대체할 수 있는 항우울제는 많다. 하지만 세로토닌은 그야말로 호르몬이다. 우리 신체에서 만들어내는 항체인 셈이다. 세로토닌이 많은 사람은 행복을 오래 지속시킨다고 한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를 억제하기 때문인데, 취미활동이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진시킬 수 있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얼마 전 모임에서 파한 후, 귀가 중 또다시 발작이 찾아왔다. 하차역을 두 정거장 앞두고 쓰러질까 신경이 곤두섰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음날 냉큼 병원에 내원했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괜찮은 게 아니었어요. 왜 그럴까요? 약을 먹는데도 차도가 없어요."


  주치의는 말한다. 정신과 전문의는 증상이 완화되게끔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할 뿐이지, 완치는 환자 스스로가 결정짓는 것이라고. 그렇다, 약에 의존하는 정신과 치료는 없다. 가장 완벽한 치료제는 나 자신의 의지다. '약을 먹으니 나을 수 있어.'가 아닌 자신을 소중히 하고 슬픔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자기 방어만이 최고의 명약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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