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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 설 Aug 31. 2022

부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임직원 300명이 육박하는 회사에 경조사는 참 많다. 직원 결혼식장에서 다른 직원의 부고장이 날아오기도 하고, 심지어 직원 본인이 부고장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오던 월요일 아침, 평소와 다르지 않은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 가장 먼저 메일을 열었다. 인사팀에서 온 메일이 눈에 띄었다.


<부고>

영업지원부 모대리 모친상 부고 전해드립니다.

발인 : 2022.08.00.00:00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내 나이 이제 43, 모대리는 나보다 6살 아래였다. 우리가 벌써 모친상을 겪을 나이가 되었나 싶은 게 인생의 덧없음이 몹시 서글프게 다가왔다. 육아 휴직 전, 일 때문에 참 스트레스도 많았다. 경영지원부에서 영업지원부로 부서 이동을 하면서 함께 일 해왔지만 입사 3년 차 대리인 나와, 입사 11년 차인 모대리와는 묘한 경쟁심리가 있었다. 큼지막한 일은 모대리가 하고, 하찮은 일은 내 업무였다. 그중에서도 전화 업무에 내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전대리님 전화 좀 받아줘요. 내가 바빠서 전화 업무까지 소화를 못 해.”

“저도 바빠요. 내가 전화 업무 하는 사람도 아니고. 전화는 공통 업무 아닌가요?”

“그래도 입사 11년 차인 나보다 전대리가 받아주는 게 사내 상도덕 아닌가?”


입사 연차 때문에 같은 대리급인데도 업무 지시는 항상 모대리에게서 일방적으로 내려왔고, 이 때문에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 중일 때 내게 찾아온 임신은 육아 휴직까지 15개월을 쉬게 했다. 복직 후 난 다시 부서 이동이 있었고 모대리와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그 점이 오히려 모대리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의 모친에게 지병이 있다는 말은 전혀 듣지 못했기에 갑작스러운 부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대리 일가친척이 없어서 장례식장이 썰렁하다고 하니, 되도록 많은 직원이 가서 자리라도 채워줄 수 있도록 합시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상무가 와서 직원들을 독려했다. 몇몇 그동안 마음 맞았던 직원, 업무적으로 가깝게 일하는 직원들은 퇴근 후 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알 수 없는 눈물이 나왔다. 생면부지의 망자에 대한 애도일까. 장례식장을 향하는 걸음이 가벼울 수는 없지만, 그동안 수많은 장례식장을 갔어도 이렇게 긴장해보긴 처음이었다.


“와 줘서 고마워요.”

“아니야, 와야지. 괜찮아요? 생각보다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네. 어떡해요. 어쩌다가..”

“지병이 있으셨어. 말을 안 했을 뿐이지.”


그녀는 생각보다 덤덤했다. 2년여의 병간호로 마음이 단단해져 이제 눈물조차 안 난다고 한다.


“내일 입관할 때는 울 것 같아. 그땐 울어야지, 뭐. 엄마 영원히 보내드리는 거니까.”


모대리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쏟았다. 그건 분명 실례였다. 그렇지만 멈출 수 없었다.


“미안해요. 내가 주책이네. 미안해요. 여기 와서 이러면 안 되는데.”

“울지마요.”


검은색 상복을 입은 모대리가 나를 위로하며 같이 울었다. 그날 돌아오는 길은 마음과 몸이 무척이나 무거웠다. 이제 검은색 정장을 맞춰둬야겠다. 세월이 내게 그렇게 주문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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