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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 설 Nov 14. 2022

지면이 아닌 필름에 새긴 작법서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콜럼비아 프라이 스타, 2001)를 보고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전공과 교수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추천을 받은 그날 밤 나는 영화를 관람했고, 그날 이후 작법서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마다 반복해서 영화를 재생했다. 영화는 작법서를 대신하기에 충분했다. 눈으로 들어온 영상은 가슴으로 머리로 깊게 새겨졌다.      


 천재 작가와 천재 작가의 조우, 舊(구)와 新(신)의 조화, 영화의 구도는 이렇게 시작한다. 흔히 문예 창작의 교수자들이나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필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영화는 필사에서 시작한 완벽한 작품으로 갈등을 만든다. 자말(롭 브라운)은 수십 년 전 신문지면에 실렸던 포레스터(숀 코네리)의 글을 필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작품을 창작한다. 이 장면 하나로 영화는 작가가 가져야 할 윤리를 설명한다. 젊은 시절 대부분의 출판사에서 자신의 글이 거부당하면서 생긴 열등감 많은 크로포드(F. 머레이 아브라함)는 작문대회에서 자말이 제출한 작품을 보고 문제 삼는다. 자말의 천재성을 인정하지 않고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린 이해가 안 되면 가정을 한단다.     


 단지 제목이 같다는 이유로 작품 전체를 의심하고 반성문을 쓰게 한다. 하지만 자말은 거부한다. 영화는 주인공인 자말의 심리 변화를 불러오기 위해 반성문이라는 소재를 가져왔지만,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갖다 쓴 제목은 분명 문제 삼을만하다. 정확히 말해 작가가 가져야 할 기본 윤리(참고문헌, 각주 인용 등의 명시)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반성문을 쓰지 않은 자말은 농구 특기생으로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한 사립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중요한 경기를 치르게 된다. 여기서 자말은 마지막 자유투를 던지는데 영화는 자말의 심리를 관객에게 해석하게 했다. 자유투가 실패한 것이다. 필자의 사유를 붙이자면 ‘이런 선생 밑에서 배울 건 없겠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16세의 자말에게 충분히 생길 수 있는 반항 아닐까.     

 

 영화 초반 자말의 천재성을 빠르게 눈치챈 포레스터는 자말의 방문에 괴팍스럽게 말을 내뱉는다.


내 집에 접근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5천 단어로 쓰는 게 어때?     

 

 어쩌면 그것은 원고 청탁이다. 마감일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원고량을 정확히 글자 수로 제시했다. 자말의 글을 받아 든 포레스터는 본격적으로 자말의 글쓰기 선생이자 친구가 된다. 무엇이든 쓰라고 이야기하는 포레스터의 말에 자말은 구형 타자기 앞에서 망설인다. 이에 포레스터는 두 번째 작법을 말한다.     

 

 우선 가슴으로 초안을 쓰고 머리로 다시 쓰는 거야.
작품의 첫 번째 열쇠는 그냥 쓰는 거야.

 

 영화에서 자말은 16세의 어린 ‘천재 작가’ 캐릭터지만 현실에서 천재 작가라는 건 없다. 그는 늘 책을 읽었다. 메모도 빼놓지 않았다. 영화에서 그의 메모 수첩은 수없이 등장한다. 그의 그런 습관이 천재를 만든 것이다.

 

그 애는 항상 이 책들을 읽어요.
전 읽어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책들을요.


 책을 읽으면서 글 실력 늘어나려면 한두 번 읽어서는 쉽지 않다. 그렇게도 가능하다면 천재 작가라는 수식어 자체가 없을지도 모른다. 너도나도 천재일 테니까. 같은 책을 반복적으로 읽으면서 내 안의 소양으로 내공을 쌓게 되는 것이다. 책의 내용과 읽으면서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구절구절을 모두 달달 외우고 있었다. 작가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담담하게 꺼내올 수 있는 건 ‘습관적인 독서’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네가 내 방식을 습득해서 네 방식으로 만들었구나.  


 단 하나의 작품 발표로 퓰리처상을 받은 포레스터의 작품을 통해서 자말 자신만의 문체를 습득한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자말이 부러웠다. 저런 천재성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하지만 영화를 볼수록 나 자신 또한 작아졌다. 아직 자말을 따라가기에 내 열정은 부족하다. 일단 독서에서부터 열의가 부족하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항상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현실은 아쉽게도 나의 이상을 따라주지 못한다. 우리는 글을 쓰기 위해 여기 모였다. 이 글을 읽은 글을 쓰고 싶은 열정을 가진 독자라면 난 이 영화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파인딩 포레스터』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간 이들의 평온은
그들을 뒤따르는 자들의 불안을 잠식시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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