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 시집 『마음의 일』(창비, 2020)을 읽고
“하고 싶던 일도 많던, 비좁던 내 하루. 꾸지람과 잔소리에 익숙해진 우리들. 어른이 빨리 되고 싶던 고등학교 그 시절에.” 내가 요즘 즐겨 듣는 이장우의 ‘청춘예찬’ 가사 중 일부다. 오은의 『마음의 일』은 읽는 내내 이 노래를 흥얼거리게 했다. 그리고 난 그때로 돌아갔다. 열아홉 살, 찬란했던 그날로. 그때의 나에게는 위로가 필요했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의 고단함에 대한 위로, 정확한 진로를 정하지 못한 불안감에 대한 위로, 외모에 관심을 쏟아부으면서 느껴지는 괴리감에서의 위로 등 나에게는 수많은 위로가 필요했다. 『마음의 일』은 그때 읽었어야 했을 책이다. “책을 아무리 읽어도 정작 우리는 책이 아니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딴」) 첫 번째 위로는 생각보다 금방 찾아왔다. 통과의례처럼 다들 하는 공부여서 했다. 시키지 않아도 해야 할 분위기였다. 그에 대한 갈증도 있었다. 그 끝이 정말 있기는 한 건지, 정말 대학을 가면 끝인 건지, 당시엔 알지 못했다.
열아홉 살의 나는 항상 아침을 거르고 6시 10분에 마을버스를 탔다. 새벽녘의 이슬 냄새가 좋았다. 교과서 안, 수많은 메모의 연필 냄새에 익숙한 밤이 지나고 맡는 새벽의 냄새는 다른 세계로의 산소호흡기 같았다. 그래서 난 새벽 6시 10분 창동에서 쌍문동으로 가는 60번 버스를 고3 내내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나는 새벽 색이 좋아. 새벽 색? 새벽 색이 뭐지?”(「나의 색」) 새벽 색은 그날의 이슬 냄새와 닮아 있었다. 그것은 ‘새벽 색’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대한민국에서 수험생은 많은 의미를 준다. 일단, 가정에서의 서열이 바뀐다. 나이, 촌수를 따지지 않고 서열 1위가 된다. 그만큼 부담은 내 어깨를 꾹 누른다. 작가는 그 시절 받았을 수험생의 스트레스를 구구절절 잊지 않고 기록했다. “학교를 졸업했는데 또다시 학교로 가야 한다 전학 같았다”(「졸업」) 전학이라는 단어가 왜 이렇게 사무치던지. 수능과 졸업을 코앞에 두고 있는 현시점에 그들의 마음이 전달되는 듯해서 순간 울컥했다.
실제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얼마나 많아. 나만 해도 그래.
고민이 많은데 해결된 게 없어. 하루하루 늘어나기만 한다고
-「헤피엔드」中
행복해지고 싶지만 명확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준비되지 않은 성인으로서의 마음과 식구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 마음이 짊어질 수 있는 무게의 단어를 모두 얹어놓기에 그때의 우리는 너무 어렸다. 대한민국의 입시는 삭막하다. 메마르고 따갑다. 그래서 그의 표현이 그날의 회상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입시에 대처하는 수험생에게서 느껴지는 온도. 『마음의 일』은 그 온도가 있었다. 치열하지만 따뜻했던 그때가 그리워졌다.
그때 이 책을 만났다면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많이 그어놓았다. 그 밑줄은 내 수험번호 같은 것이어서 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밑줄 위의 이야기를 수년 후 내 아이에게 들려줄 것이다. 그 밑줄이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