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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 설 Nov 30. 2022

틈만 나면 데이트

기름칠 하기

 병가 잘 보내기 프로젝트 1탄이 뮤지컬 관람이었다면 2탄은 부부 데이트!! 우리 부부는 2006년 12월 4일 연애를 시작한 17년 차 단짝 친구다. 연인으로 시작해 부부의 연을 맺으면서 세상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아이를 낳고 겪는 육아의 고충을 함께 나누는 친구이자, 직장 생활이 힘들 때면 술 한 잔 기울이며 상사 뒷담화를 들어주는 친구이고, 세상살이가 버거울 때마다 우린 항상 같은 자리에 있는 친구다. 물론 절교를 선언하며 싸우기도 많이 했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모래사장 위에 선을 긋고 너는 거기 나는 여기 했다가도 파도가 지나가면 선이 사라지고 모래 담도 허물어지듯 우리의 싸움은 너그럽게 양보를 향해 달릴 것이다. 하지만 꼭 필요한 기름칠이 있다. 오래된 문에서 소리가 나면 경칩에 기름칠을 해주듯 우리 부부에게도 가끔 ‘데이트’라는 기름칠을 한다. 손깍지 끼고 최대한 붙어 친한 척. 주변에서 우리 부부에 대한 오해라도 한다면 금상첨화! 몸이 가까워져야 마음도 가까워진다.


 “우리 오늘 데이트할까? 내일부터 추워진다니까 오늘 하자, 데이트.”


 방긋방긋 웃으며 남편에게 제안했다. 싫지 않은 눈치다. 그래서 부랴부랴 대중교통을 이용해 데이트를 시작했다. 잠실부터 건대까지. 2호선 데이트다.     


 사실 화양리는 내게 익숙한 동네다. 결혼 직전까지 살던 곳이면서 우리의 설렘도 챙길 수 있었던 곳. 익숙했던 만큼 낯선 동네가 되어버린 그곳은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자주 가던 ‘최가커피’가 없어졌고, ‘버거킹’은 위치가 바뀌었으며, ‘아트박스’가 있던 자리는 분위기 좋은 카페가 새로 들어섰다. 낯선 풍경에 우린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웃었다.


 “우리가 너무 오랜만에 왔나 보다.”


 가끔 연애가 힘들 때 드나들었던 ‘반디앤루니스’도 ‘교보문고’로 바뀌어 있었다. 오랜만에 서점을 들른 우린 그곳에서도 각자의 취향에 따라 갈라져야 했다. 난 에세이, 장르 소설 분야로 남편은 한국 역사서 분야로. 생각해보면 우린 여러 면에서 다른 점이 많다. 그런데도 오랜 시간 사랑하는 친구로 지내는 걸 보면 기름칠이 제법 효과가 있는 듯싶다. 집으로 돌아가던 어둑어둑해진 시간, 광역버스 안에서 남편이 내게 물었다.


 “3탄은 뭐야?”

 “3탄? 뭐긴. 밀린 집안일 해야지.”


 아쉬워하는 듯한 남편의 표정이 오늘의 데이트가 만족스러웠음을 보여줬다.

 

아싸, 오늘 기름칠도 좋았어!


 집으로 돌아가면 우린 다시 엄마, 아빠의 자리로 돌아가 아이들과 함께할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건 인생에 주는 기름칠이다. 내 인생에 아이들은 항상 활력이 되고, 행복의 이유가 된다. 하지만 육아가 행복하려면 지금처럼 틈만 나면 손깍지를 끼고 부부가 아닌 연인으로 돌아가는 이벤트가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 부부가 여전히 사랑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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