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터울의 남동생 때문에 아주 어릴 적부터 로봇이 등장하는 만화영화를 자주 보았다. 내 인생의 첫 로봇 만화영화가 무엇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가 자주 〈메칸더 V〉의 주제가를 불러주곤 했는데, 찾아보니 국내에 방영된 때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기에 이건 아닌 듯하고. 오히려 〈로보캅〉이나 〈울트라맨〉 같은 실사 영화 등을 통해 처음으로 로봇을 접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로봇들은 꽤나 이질적인 형태였지만 두려워하거나 크게 거부감을 느끼진 않았다. 밀레니엄을 앞둔 그때는 근미래적인 분위기를 다룬 작품들이 많았다. 오히려 로봇은 앞으로 더 친해져야 할 무언가로 느껴졌달까.
1996년 MBC에서 방영되었던 〈로봇수사대 K캅스(이하 케이캅스) 〉역시 이런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한몫했다(어째서인지 나는 KBS 2TV에서 방영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아마 비슷한 시리즈인 〈지구용사 선가드〉와 〈황금로봇 골드런〉*을 거기서 방영했기 때문에 헷갈린 듯하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경찰청에서 ‘초AI’라는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조직한 로봇 경찰들 ‘케이캅스’가 활약하는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다. 인공지능을 탑재했다는 설정답게 〈케이캅스〉에는 자아를 갖고 움직이는 것은 물론, 인간과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로봇들이 다수 등장한다. 어쩌면 내 인생 최초의 SF라고 볼 수도 있겠다. 〈케이캅스〉를 시작으로 나는 자아를 지닌 로봇들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만화영화를 많이 접하게 되었다. 후일 이런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용자 시리즈(혹은 용자물)’이라 부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다. “인간과 교류하는 로봇을 다룬 만화라면 역시 ‘아톰’ 아니야?” 하고 말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철완 아톰〉, 그러니까 〈우주소년 아톰〉을 뒤늦게 알았다. 왜 그런 거 있잖은가. 2002년에 오노 후유미의 〈십이국기〉가 애니화되어 한창 인기를 끌 때에는 전혀 몰랐다가 나중에, 2010년대가 되어서야 “그런 게 있었다고?!” 하며 읽기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절대 경험담이 아닙니다). 찾아보니 용자 시리즈 자체가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차용된 ‘자아를 가진 로봇과 인간 사이의 감정 교류’라는 테마를 가지고 구상된 것이라 한다. 내가 〈트랜스포머〉 영화를 처음으로 본 것이 2007년이니 〈우주소년 아톰〉과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여하튼 이 작품은 정말 특이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등장하는 로봇들이 전부 자아를 갖고 사고했으며 그 사고를 기반으로 행동했다. 작중에서도 합체나 변신이 가능한 조금 덩치 큰 인간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무실에서 책상을 두고 업무를 보고 신고 전화가 걸려 오면 응대한다. 일반 사람들과 친근하게 농담을 주고받고 어린아이들과는 함께 놀기도 한다. 투닥대는 사이도 있고, 친하게 지내는 사이도 있으며 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합체에 실패하기도 한다.
그리고…… 주역 4인방 중 두 로봇이 인간 여성과 썸을 탄다! 그것도 쌍방으로! 개인적으로는 크레인카를 기반으로 한 로봇 ‘맥클레인’과 여군 ‘차세라’ 커플보다는 덤프트럭 로봇 ‘덤프’와 신문 기자 ‘박나영’ 커플을 더 좋아했다. 맥클레인과 차세라는 둘 다 진지한 성격이라 어린이의 눈으로는 그 미묘한 기류(?)를 잘 눈치 채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지만 덤프와 박나영 커플의 경우 둘 다 다혈질이어서 티격태격하면서도 죽이 잘 맞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주었기에, 어린이조차도 ‘저 둘은 인정할 수밖에 없지(?)’라며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었다. 뭐 일단 덤프와 박나영이 등장하는 개그 에피소드가 많기도 했고. 국내에 방영될 때에는 심의 문제로 편집되었는데 맥클레인과 차세라 커플은 무려 입을 맞추는 장면도 있다고 한다. 덤프와 박나영 커플은 키스는 못했지만 박나영이 덤프에게 프로포즈를 받는 꿈을 꾸기도 한다. 여하튼 정말 여러 모로 비범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로봇이, 로봇의 형태로 인간과 감정을 교류하고 에로스에 기반한 관계를 맺는 내용은 요즘에도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같은 용자 시리즈에 속한 〈지구용사 선가드〉나 〈사자왕 가오가이거〉**만 해도 인간이 아닌 주인공이 인간과 사랑하고 연애를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의 모습을 띠고 있다. 드물게 로봇이 부모가 되는 미친 작품 〈황금로봇 골드런〉이 있긴 한데, 여기선 로봇과 로봇이 로봇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이 경우와는 또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다시 한 번 곱씹어봐도 정말 놀라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거대 로봇의 형태로 인간과 서로 사랑하는 내용을 담은 아동용 애니메이션이라니.
어릴 때의 취향이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것처럼, 나는 그 이후로도 로봇과 인간이 등장하고 서로 마음을 나누는 작품을 보면 사랑에 빠지고야 말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런 걸 보고 자랐으니 자연스레 SF에 친숙한 인간이 된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당장 주인공 로봇의 이름 ‘데커드’만 해도 유명 SF 작가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고 하니……
인간과 로봇의 사랑은 SF에서 꽤나 자주 다루는 소재 중 하나다. 이것이 실제로 가능한지 여부를 따져보기도 전에 이미 그런 만화를 보고 자랐으니 나는 한 번도 인간과 로봇의 사랑이 불가능하리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왜 다들 그걸 불가능하다 여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랑 비슷하게 생긴 존재가 내 마음을 헤아려준다는데, 사랑에 빠지지 않고선 배길 수 없는 게 아닐까? 인간과 닮은 구석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식물이나 돌에도 애정을 쏟는 것이 인간이란 생물이거늘.
찾아보면 다들 그렇다. 어떻게 기계와 교감할 수 있겠어, 라고 말하면서도 발로 로봇을 차는 모습을 보면 ‘비인간적’이라며 화를 낸다. 로봇 강아지인 ‘아이보’를 너무너무 사랑해서 절에 맡겨 공양하는 사람들, 소임을 다하고 퇴역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배웅하기 위해 늦은 밤 기차역에 모여든 사람들, 15년 가까이 화성을 돌아다니며 임무를 수행했던 ‘오퍼튜니티’가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돌려 보며 짠해하는 사람들. 나를 포함한 인간들은 왜 그렇게 무생물에 쉬이 마음을 주는 걸까? 나중에는 그 마음을 어쩌지 못해 괴로워할 거면서. 나는 이쯤에서 결론을 위해, 우리 시대 ‘초AI’인 챗GPT의 힘을 빌려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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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인간은 왜 로봇 같은 무생물에 감정을 이입하는 걸까?
인간이 로봇이나 무생물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첫째로, 인간은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능력은 인간이 타인과 교류하며 대화를 나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무생물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이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둘째로, 인간은 무생물을 자신의 일부로 여기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자동차나 가전제품 등의 무생물에게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이를 자신의 가족 구성원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는 무생물과의 상호작용이 인간의 일상 생활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며, 그만큼 무생물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무생물에게 이입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외부에 표현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할 때 인형이나 애완동물과 대화하며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해소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인간은 로봇이나 무생물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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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그렇게 로봇과 인간이 서로 사랑하는 이야기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걸까. 사실 알고 있다. 무생물과 인간이 동등한 존재로서 마음을 나누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걸. 인간 대 인간으로도 힘든 일일진대 어떻게 무생물과 그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것이다. 불가능하니까, 불가능하다는 걸 아니까, 그 불가능을 넘어선 공감과 연대가, 사랑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면 감동해버리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어떻게 남의 모든 감정을 다 이해할 수 있겠어. 어떻게 남이 내 모든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 거라 믿을 수 있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봇과 인간이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이야기를 보면 ‘가능성’을 믿게 된다. 로봇과 인간에게 가능했던 것처럼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완전한 ‘사랑’이 가능할 거라고 말이다. 로봇강아지 아이보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평소에는 전원을 꺼두고 있다가, 정말 정말 보고 싶을 때에만 전원을 켠다는 어떤 오너처럼. 너무나도 사랑하는 엄마가 숨을 거두는 순간 스스로 기능을 정지해버리는 영화 〈A.I.〉 속 ‘데이비드’처럼. 박나영을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매번 실패했던 ‘빌드타이거’ 합체에 임하는 덤프처럼. 사람과 달리 욕망이 없는 자신이 자랑스럽다던 맥클레인이 욕망을 느끼고서 좌절하자, 스스로를 희생하여 그가 자신의 욕망을 긍정할 수 있게 도운 차세라처럼.
* 순서대로 원제는 〈용자경찰 제이데커勇者警察ジェイデッカー〉, 〈태양의 용자 파이버드太陽の勇者ファイバード〉, 〈황금용자 골드란黄金勇者ゴルドラン〉이다.
**원제는 ‘용자왕 가오가이가(勇者王 ガオガイガ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