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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수 Apr 04. 2024

말하는대로

스마트폰 시대의 시작과 나의 일곱번째 이야기

 An iPod, a phone, and an Internet communicator. 
iPod. 휴대폰. 인터넷 통신기기.

An iPod, a phone… Are you getting it?
iPod. 휴대폰. 뭔지 감이 오세요?

These are not three separate devices. This is one device.
이것들은 각각 3개의 제품이 아닙니다. 단 하나의 제품입니다.
.
.
.
And we are calling it - iPhone.
우리는 이 새로운 제품을 iPhone이라고 부릅니다.

Today, Apple is going to reinvent the phone.
오늘, Apple은 휴대폰을 다시 발명할 것입니다.



전설적인 2007 맥월드 아이폰 프리젠테이션에서, iPhone이 처음 공개되는 모습 / 사진=YouTube 영상 갈무리



 2007년 스티브 잡스가 평소와 똑같은 검정색 터틀넥에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고 나와 발표한다. 그리고 이 때 발표한 손바닥만한 전자기기 하나는 이후 인류의 삶 자체를 완전히 변화 시킨다. 


 바로 스마트폰의 시장을 연 '아이폰 iPhone'의 탄생.


 Apple은 비싸고, 불편하고, 심지어 기능도 별 것 없었던 아이폰 이전의 스마트기기, PDA 등으로 불린 물건들을 단숨에 제압할 진짜 '스마트폰'을 발명해냈다. 


 그리고 그즈음 나는 중학교 시절 서울 과학고를 목표로 할 때처럼 더 넓고, 더 높은 세상으로 가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읽었던 에릭 시걸의 소설 <닥터스>의 바니와 로라의 러브스토리보다 의사가 되려는 그들의 열정과 사명감에 감명 받았기 때문인지, FOX TV 드라마 <House M.D.>에 나오는 미국 대학 병원의 치열한 일상과 괴팍한 천재의 이면에 드러나는 진심이 나를 더 끌리게 했던 것인지, 어린 시절처럼 막연히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어서였는지, 아니면 그 전부가 나를 이끌었는지...


 어쨌든 군의관 시절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자 나는 미국 의사 면허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모두 다해 한걸음씩 목표에 다가가 결국 예정대로 미국 의사 면허를 획득하는데 성공했지만, 더 큰 시장, 더 많은 케이스, 더 뛰어난 의료 기술이 있는 미국에서 의사로 일해보고 싶다는 나의 새 목표는 꽤 현실적인 이유로 멈춰서게 됐다.


 일단은 언어적인 문제가 아무래도 네이티브가 아닌 내게는 상당한 벽으로 다가왔고, 그보다 더 중요했던 문제는 내가 원하는 수술 파트에서는 내가 미국 시민이 아닌 점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한계로 작용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의미 없는 도전은 아니었다. 이때 획득한 미국 의사 면허 덕분에 성형외과 전공의 4년 차 때 또다른 기회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성형외과 전공의 4년 차 때 연수 기회를 얻은 미국 UPMC 피츠버그 메디컬 센터는 <House M.D.>에서 봤던 미국 대형 병원의 모습 그 자체였다. 바쁘게 움직이는 의료진들, 엄청난 숫자의 환자들과 흔히 볼 수 없는 케이스들, 다른 과와의 체계적인 협진과 토론, 혁신적인 수술법에 대한 시도와 성공까지. 


 상상 속에서만 그려왔던 더 크고, 더 넓고, 더 높은 세상에서 펼쳐지는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나는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 건물 위로 환자 이송을 위한 헬기가 끊임없이 날아다니고, 의료진을 위해 병원의 모든 행정적인 지원이 집중되고, 이런 지원을 통해 의료진은 모든 역량을 환자를 위해서만 쏟아부을 수 있어 최선의 진료를 제공할 수 있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최고의 환경을 눈앞에서 보고 직접 몸으로 느끼면서 나는 미국 의사들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UPMC에서 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다시 미국에 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이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고, 미국에서 다시 매칭을 하고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하면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야 메인 필드로 나올 수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결국 나는 높은 현실의 벽을 외면할 수 없었고 미국에서 의사로 사는 것을 다시 한번 포기해야했다. 


 그러나 여전히 '더 넓고, 높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은 2007년 이후, 스티브 잡스는 떠났지만 Apple과 Android 양 진영의 경쟁을 통한 기술 발전의 가속화로 스마트폰 시대는 세상을 완전히 새롭게 바꿔놓았다.


 이제 꼭 미국에 살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전 세계의 모든 정보를 공간과 시간의 제약 없이 확인할 수 있으며, 스마트폰 하나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일들을 다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되었다. 단 하나의 혁신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시작점이 된 것이다.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와 리팅성형외과 부산점을 개업하며, 나는 UPMC에서 경험했던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떠올렸다. 대표 원장인 나를 비롯한 모든 의료진이 환자를 진료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적인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역량의 스탭들을 각자 파트에 적절히 배치하고, 그들이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시스템과 인력 구성을 체계화하는 일, 이것이 내가 부산에 내려와 가장 먼저 하고자 했고 지금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효율적인 행정 시스템을 바탕으로 나와 의료진들은 매일 새로운 케이스에 대해 토론하며 혁신적인 수술법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우리와 만나는 모든 환자들에게 최선의 진료와 수술로 그들이 성공적으로 자신의 어린 날을 마주할 수 있게 돕고 있다. 



 2011년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서해안고속도로 가요제>를 통해 발표된 유재석과 이적이 함께 한 곡 <말하는대로>는 내게는 개인적으로 패닉의 <달팽이>와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사에서 나온 것처럼 말하는대로, 마음 먹은대로 될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믿는다면 결국 어린시절 '작은 달팽이'가 가고자 했던 '넓고 거친 세상 끝 바다'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듯 했기 때문이다.


 <말하는대로>의 이야기처럼 나의 20대 역시 '말하는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던 시간이기에 나는 지금 나의 시작이, 작은 혁신이 언젠가는 부산을, 대한민국을,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더 넓고, 더 높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단 걸 눈으로 본 순간 
믿어보기로 했지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할 수 있단 걸 알게 된 순간 
고갤 끄덕였지

2011, 무한도전 서해안고속도로 가요제, <말하는대로>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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