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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수 Mar 28. 2024

푸른 소나무

남자의 자격과 나의 여섯번째 이야기

내게 주어진 조금 다른 의무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수련의 과정을 시작할 때 대부분의 남자 졸업생들은 의무사관후보생에 지원하게 된다. 당연하지만 의사라고 해서 대한민국 남성에게 주어진 국방의 의무를 지키지 않을 수 있는 특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 지원하는 대부분의 의사들은 '공보의'라고도 부르는 공중보건의사로 복무하기를 원한다. 신분이 군인이 아닌데다 80% 이상의 공중보건의사들은 의료 취약 지역의 보건지소에 소장으로 배치되기 때문에 업무 강도가 비교적 낮고 눈치를 볼 상사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연하게도 장교 신분인 군의관에 비해 훨씬 자유롭고 여유 있는 복무 기간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인턴을 마치고 곧바로 입대를 선택했기 때문인지, 혹은 그냥 그럴 운명이었던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군의관으로 배치 되었다. 3월 초 충청북도 괴산군의 육군학생군사학교에 입영했을 때도 내가 36개월 간을 군인으로 보내게 된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하지만 '군인화' 과정으로 불리는 기초군사훈련을 받기 시작하자 그런 잡생각은 모두 사라졌다. 이미 20대 중후반이 된 가운만 입던 의사들에게 전투복과 계급장이 주는 무게는 시작부터 꽤 강렬했으니까.



 지금에 와서 이야기하면 괴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군 입대 전 원래 내가 원하던 전공은 정형외과였다. 사람의 뼈를 다룬다는 것이 뭔가 강한 의지와 힘이 필요할 것 같아서 남자다워 보였고, 인공관절이라던지 척추 수술처럼 결과가 드라마틱하고 확실하면서 응급상황에 대한 수술도 많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공의 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입대한 나에게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누구나 훈련소 시절에는 그렇겠지만 아직 제대로 걷는 법조차 모르고 줄 하나 반듯하게 서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남자다움'이라는 정형외과의 장점과 나는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며칠만에 들었던 것이다.




 군의관으로 복무하기 위해서는 육군학생군사학교 수료 후에 대전 자운대의 국군의무학교에서 2주간의 신분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잠깐의 외출, 외박을 통해 가족들과 만나기도 하면서 군인이 됐다는 걸 조금 더 실감하는 시간이었지만 어쨌든 장교이자 의사로 복무하게 되면 일반 사병들보다는 좋은 처우를 받고 경험을 쌓으며 일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책임감을 가지고 군의관으로서의 시간에 충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도 되었다.


 1년 차에는 야전부대에서 근무하며 위수지역 등 상대적으로 군인이 겪는 불편은 겪었지만 사실 업무 강도는 인턴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낮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전역 후에 어떤 전공을 선택해 전문의에 도전할지, 그것을 위해서 어떤 것들을 더 준비해야하는지 정신 없던 병원에서의 시간들과는 분명 다른 것들이 있었다.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을 더 고민하고 매일 찾아오는 다양한 아이들과 대화도 하면서, 미래에 환자로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학교와 병원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군병원에서의 생활은 조금 달랐다. 인턴 생활보다는 분명 업무 강도가 낮지만 통합 병원으로 불리는 군병원들은 근방의 모든 부대에서 일어난 사고와 질병에 관해 책임을 다하는 곳이기에 시시각각 들어오는 환자들을 살피고, 또 그들이 회복하여 건강하게 부대와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가지고 치열하게 근무해야했다.



 당시는 KBS2에서 방영하던 <남자의 자격>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한창 화제가 되던 시기였는데, 훈련과 임무 수행 중 부상을 입어 후송되는 병사들을 보며 나는 그 '자격'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군대는 남자들의 전유물이 아니지만 의무 복무를 하는 자원은 모두 남자들이고 그 중에서도 장교나 부사관이 아닌 사병(현재는 용사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들은 대부분 스무살 초반의 한창 하고 싶은 것이 많을 나이에 스스로의 자유와 시간을 희생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아이들이다. 


 그 어린 친구들이 골절, 디스크 파열과 같은 심각한 정도의 부상을 당해 군병원에 후송되어오면 군의관은 그들이 왜, 어떻게 그런 겪지 않아도 되었을 시련을 마주했는지에 대한 경위를 누구보다도 자세히 알 수 밖에 없다. 


 겨우 20대 후반에 접어든 군의관에게 그들이 겪은 사고는 단순히 '환자'라는 대상이나 '케이스'가 아닌 함께 나라를 위해 의무를 다하는 어린 동료, 혹은 동생 같은 친구들에게 찾아온 비극이였다. 


 그들을 반드시 사회로 돌아가기 전에 완전히 회복할 수 있도록 책임져야하는 것이 그 때 나의 '의무'였다.




 그 시기쯤 성형외과 군의관 선배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나는 '안면재건술'이라는 분야에 대해 전보다 자세히 알게 되었다. 아직 수술을 경험해보지는 못했었지만 선배들이 말해주는 '안면재건술'은 단순한 의료행위라기보다는 그 어린 친구들이 겪은 비극을 다시 일상으로 되돌려주는 '작품'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내가 성형외과 전문의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이자, 지금 리프팅을 통해 '어린 날을 만나게 해주는 의사'가 된 계기였다.


*안면재건술
선천적 또는 후천적으로 생긴 질환이나 외상으로 인해 얼굴 구조가 변형되거나, 기능의 일부를 상실한 환자를 치료하는 외과적 수술 



 '남자의 자격'을 증명한 이들이 겪은 비극을 다시 일상으로 돌려주는 일, 그들이 다시 원래의 자신을 만나게 해주는 일은 정형외과에서 느꼈던 매력인 '남자다움'과는 차원이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내게 '남자의 자격'을 갖추게 해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역을 앞두고 미국의사면허를 준비하게 된 것도 성형외과, 그 중에서도 '안면재건수술'에 대해 좀 더 큰 세상에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이후 실제로 미국 UPMC 피츠버그 메디컬 센터 성형외과 연수를 가서 보고 느꼈던 것들은 다음 화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군병원에서 느낀 성형외과에 대한 매력과 '안면재건수술'에 대한 생각이 지금의 리프팅에 집중하는 '성형외과 전문의'인 나를 만들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때 그 결심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테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많은 이들이 '남자의 자격'을 증명해내고 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그 '의무'에 충실한지,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지를 너무 잘 알기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1997년 쓰여진 군가 <푸른 소나무>를 바치며 모두가 안전하게 사회로 돌아와 다시 일상의 자신을 만나기를 기도한다.


이 강산은 내가 지키노라 당신의 그 충정

하늘 보며 힘껏 흔들었던 평화의 깃발

아아 다시 선 이땅에 당신 닮은 푸른 소나무

이 목숨 바쳐 큰나라 위해 끝까지 싸우리라

1997, 대한민국 국방부 군가, <푸른 소나무>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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