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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수 Apr 1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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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으로 끝난 만능세포 사건과 나의 여덟번째 이야기

STAP 세포는 있습니다.



 2014년 1월 사이언스, 셀과 함께 세계 3대 과학학술지(혹은 CNS)로 불리는 영국의 네이처에 전세계가 주목할만한 논문이 발표됐다.


'약산성 용액에 30분 가량 담그면 온 몸을 재생할 수 있는 만능세포를 만들 수 있다.'


 평범한 세포를 약산성 용액에 담그는 것만으로 체세포 분화 메모리가 리셋되는 과정을 거치며 역분화세포(人工多能性幹細胞/pluripotent cell)화 되어 초기 상태의 줄기세포로 돌아간다는 '만능세포' 개발 논문이었다.


 2013년 봄 일본 이화학연구소(Institute of Physical and Chemical Research, 통칭 Riken) 소속의 30세 여성 과학자 오보카타 하루코가 개발해낸, 이른바 STAP세포(Stimulus-Triggered Acquisition of Pluripotency, 일반 세포를 자극제로 처리해 얻은 줄기세포) 라고 불리는 이 '만능세포'는 이미 2013년에 네이처에 투고된 바 있으나, 수백년의 생물학 역사를 우롱하는 논문이라는 악평을 받으며 퇴짜를 맞은 후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보완해 2014년 당당히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비윤리적 방법 없이, 간단한 자극만 주면 "어떤 세포로도 변할 수 있는 만능세포"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을 담은 이 논문은, 자국이였던 일본은 물론 유럽과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물론 가장 주목 받은 건 오보카타 하루코라는 여성 과학자의 "캐릭터성"이었지만 말이다.



 전문의가 되고 세브란스병원 성형외과 교수, 용인 세브란스병원 성형외과 과장직을 거치며 대학에서 교수로 남는 길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학생, 수련의, 전공의 등 많은 사람들이 의사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돕는 것에 대한 보람과 의학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자부심도 있었고, 남들보다 더 성실하게 노력하고 꾸준히 정진한다면 교수로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나를 설레게 하는 일은 따로 있었다.


 당시는 한참 본격적으로 "미용성형"에 대한 해외진출 기회가 많아지고,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의 미용수술 기술이 인정 받기 시작할 시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에게는 대학에 남는 것보다 상아탑 너머의 메인 스타디움에 뛰어들어 그들과 함께 경쟁하고, 나 자신을 그 시장에 투신하는 일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설레는 일을 위해,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더 넓고 더 높은 세상에 닿기 위해 결국 나는 필드로 나오는 것을 선택했다.


STAP 세포 논문 부정 논란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오보카타 하루코 / 사진=jtbc 뉴스 보도 영상 갈무리


"STAP 세포는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STAP 세포는 있습니다."


 오보카타 하루코, 일본 이화학연구소, 그리고 하버드 대학교의 찰스 버칸티 교수까지 참여한 저 '만능세포' 개발 논문은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조작이었다. 


 논문 검증을 위한 프로토콜 공개 이후 미국, 유럽, 홍콩 등 전 세계적인 검증팀의 재연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논문 발표 채 1년을 넘기지 못한 2014년 12월 19일에 이화학연구소가 검증을 포기하면서 남은 건 '만능세포는 있습니다.'라는 오보카타 하루코의 허망한 주장뿐이었다.


만화캐릭터 무민 옆, 앞치마를 입고 있는 오보카타 하루코 캐릭터 일러스트


"이화학연구소의 리더 오보카타 하루코 씨, 앞치마를 입은 귀여운 여성이에요." - MBS 1월 30일 방송


"세계를 놀라게 한 대발견, 일본의 이과녀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 NHK 1월 30일 방송


 오보카타 하루코에 대해 굳이 옹호해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당시 '만능세포' 개발 논문이 그렇게 엄청난 수준의 주목을 끌 수 있었던 이유는 일본 언론이 그녀의 과학자로서의 면모가 아닌, 30살의 젊은 여성 과학자라는 '여성성'에 집중해서 보도했기 때문이다.


 그녀를 '놀라운 발견을 해낸 과학자'가 아닌 '이과녀(リケジョ)'라고 칭하며 공영방송인 NHK까지 나서서 '국민 아이돌'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추앙했기 때문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론 그녀도 오염에 극도로 민감한 생물학 연구실에서 할머니에게 물려 받은 수십년된 전통 앞치마를 입는다는 둥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주장까지 하며 언론의 주목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행태를 보였지만, 결국 이런 방식의 주목은 연구자가 아닌 '여성성을 갖춘 귀여운 이과녀' 정도이던 오보카타 하루코에게 논문 조작에 대한 모든 책임과 비난을 집중하는 데에도 이용되었다.




 내가 대학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개원가로 투신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오보카타 하루코와 만능세포 연구조작 사건에 대해 설명한 이유는 간단하다.


 '캐릭터와 명성 같은 것들이 결코 성실함과 실력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이전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필드로 처음 나왔을 때 나는 이미 대학 교수직과 용인 세브란스병원 성형외과 과장직을 거친 전문의였음에도 미용수술 시장에서는 완전히 새내기 의사로 돌아갔다.


 간단한 코 수술에도 설레고 걱정되는 마음에 수술 과정을 머릿 속에 계속 그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대학병원에서 만났던 케이스들에 비해서는 정말 간단한 수술이었지만,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도 반드시 완벽하게 해내야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만능세포 조작사건이 한창 과학계의 이슈였던 2014년 8월 27일 발매 된 아이돌 그룹 EXID의 곡 <위아래>'역주행'을 거쳐 2015년 1월 8일 음악방송 1위에 등극한 사건은 그런 의미에서 오보카타 하루코의 몰락과 완전히 대비되는 사건이었다.


 무명의 걸그룹이 어떤 한 사람이 올린 '직캠'이라고 불리는 영상 하나를 계기로 신드롬을 일으킨 장면은 단지 우연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그녀들의 준비된 행운이었고, 성실하게 쌓아온 실력은 순간의 반짝임이 아닌 '역주행'이라는 결과까지 이끌었다.




 개원가로 나온지 10년이 넘게 흐르고, '리프팅'이라는 한 분야에 집중하며 성실하게 실력을 쌓아 리팅성형외과 부산점 대표원장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매일 더 준비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적어도 내가 있는 부산에 사는 환자들이 서울에서 만났던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들처럼 간단한 처치, 응급상황에서조차 불편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나와 우리 의료진들을 신뢰하고 찾을 수 있어야 하니까.


 그러기 위해서 나는 '강남 출신 성형외과 원장',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교수 출신', '용인 세브란스병원 성형외과 과장 출신' 같은 캐릭터와 명성에 기대는 것이 아닌, 어린 시절부터 늘 그래왔던 것처럼 성실함으로 실력을 갖춘 준비된 성형외과 전문의로 살고자 한다.



약올리지 말고 내게 확신을 줘 넌
쓸데없는 말은 불필요해 (필요해)

장난 아닌 진심 날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하지 마 날 눈물 젖게 하지 마

위 아래 위 위 아래

2014, EXID, 디지털싱글 <위아래>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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