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열풍과 나의 아홉번째 이야기
재래 통화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것이 작동하게 하는데 필요한 모든 신뢰입니다. 중앙은행은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신뢰할 수 있어야 하지만,
화폐 통화의 역사는 그 신뢰의 위반으로 가득합니다.
사토시 나카모토, 비트코인의 개발자
2008년 10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미상의 인물이 공개한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비트코인 백서)"라는 제목의 9쪽 짜리 논문은 당시만 해도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었다.
2009년 1월 3일에 역사적인 첫번째 오픈소스 비트코인 클라이언트가 탄생하고, 사토시 나카모토가 첫 채굴을 통해 50 BTC를 얻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것이 미래에 어쩌면 50억원의 가치를 지닐 수도 있다는 상상은 하지 않았다. 2010년 5월 22일, 미국 플로리다에서 한 남성이 무려 5만개의 비트코인으로 파파존스 피자 2판을 주문했을 때도 역시 그랬다.
사실 나는 비트코인이든 뭐든 복잡한 재테크와 관련된 내용은 잘 알지 못하는 편이다. 재테크와 관련된 부분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 내가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강남에서 본격적으로 성형외과 전문의로 활동하던 2013년 정도였다. 당시는 첫번째 비트코인 열풍이 불면서 언론에서나 오프라인에서나 벼락 부자가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대체 가상화폐라는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혹은 얼마까지 오를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화제가 되던 때였지만 내가 주목한 부분은 그런 이야기들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중앙은행의 한계를 독립적으로 극복하는 대체 화폐가 된다."
사토시 나카모토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말하는 기존 화폐, 중앙은행이 가진 한계를 극복한다는 이야기는 내가 강남 한복판에서 느끼고 있던 중앙 집중적인 시장 시스템이 주는 해소되지 않는 답답함과 맞물려 아주 매력적으로 들렸다.
대한민국은 대부분의 산업이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의료, 특히 미용 성형과 관련된 인프라가 수도 서울, 그 중에서도 강남에 집약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게다가 의사들도 퇴근하면 평범한 가장이기도 하기에 당연히 강남이라는 지역이 보유하고 있는 우수한 교육 여건, 생활 환경 등이 주는 안정감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소위 '강남페이'라고 업계에서 일컬어지는, 지방에 비해 다소 낮은 급여에도 불구하고 강남을 떠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런 집약적인 인프라와 시스템은 서울과 수도권에 거주하는 환자들, 그리고 의사들에게는 매우 편리하고 효율적인 환경이지만 수도권을 조금이라도 벗어난 지방에 거주하는 환자들에게는 너무나도 불편하고 차별적인 의료 환경이다.
강남의 성형외과에서 10년 넘게 활동하며 나는 간단한 처치조차 서울까지 와서 받아야하고, 응급 상황에서도 바로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해 불편을 겪는 지방 거주 환자들에게 늘 마음 한구석에서 미안함을 느껴야만 했다. 그게 내가 미안할 일인지, 미안해 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 역시 강남에서만 계속 활동하고 있는 의사로서 최소한 그런 마음은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유한수 원장님, 부산에서 개원해보시는 거 어떠세요?"
그래서 역시 강남에 위치한 리팅성형외과에서 3년 정도를 일하던 어느날, 나는 이런 제안을 받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네, 좋습니다. 고향에서 고향 사람들을 위해 일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서 남의 이야기처럼 썼지만, 사실 나도 역시 성형외과 전문의이기 전에 한 집안의 가장이고, 한창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다. 그리고 강남을 떠난다는 것이 나와 내 가족들에게 어떤 것들을 포기해야한다는 의미인지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10년 내내 마음 한구석에 있던 미안함을 이제 내가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에 나는 이것이 내게 찾아온 운명이라는 생각으로 바로 결단을 내렸다.
근 30여년만에 다시 돌아온 내 고향 부산은 나의 국민학교 6학년 시절인 1992년 이후 여전히 단 한번도 우승하지 못한, 신인왕도 배출하지 못한, 그러나 변함없이 나를 설레게 하는 롯데 자이언츠가 있다는 것 외에는 어린 시절 추억의 장소들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을만큼 많이 변하고 발전한 도시였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은 내가 느껴왔던 것처럼 미용 성형에 대한 인프라가 여전히 부족하고, 의료 환경이 강남에 비해서는 아직 발전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부산의 대표적인 의료 중심 지역인 서면에 리팅성형외과 부산점을 개원하면서 나는 그동안 부산 환자들이 겪었을 불편을 해결할 수 있는 의사, 부산에서 강남까지 가지 않고도 얼마든지 '나의 어린 날'을 되찾을 수 있는 병원이 되고자 하는 결심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겼다.
지난 2023년 11월, 리팅성형외과 부산점을 개원한 후부터 지금까지를 돌아보면, 여전히 더 노력하고 발전 시켜야할 부분이 많지만 나의 결심, 나의 운명, 그리고 나의 새로운 꿈이자 목표에 조금씩 다가가는 시간이 되고 있는 것 같아 행복하다.
비트코인이 기존 화폐를 정말로 대체할 수 있을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중앙 집중적인 인프라와 시스템을 그 바깥에서 바꿔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오늘도 늦은 시간까지 수술을 하고, 리프팅에 대한 연구와 성과를 나누며 더욱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며, 퇴근 길 부산의 별이 빛나는 밤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한계를 발견했을 때 그것을 극복하는 길에 내가 직접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생의 모든 순간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왔기 때문이라고, 그렇기에 찾아온 행운이라고.
손끝이 시리더니 벌써 봄이 왔네
꿈같은 바람이 불어 곳곳에
여느 때와는 다른 듯한
이 기분이 반가워
내일은 좀 다른 날이 되려나
어둠의 그림자 깊은 이 밤에 남겨진
달이 달이 밝아와
빛을 그리고 있어
2018, 마마무 미니 6집 타이틀 곡, <별이 빛나는 밤>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