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스트로헤리스에서 까리온(Carríon)까지.
일관실기 첫 번째 프로젝트는 '발끝따라걷기' 2014년 11월 6일부터 12월 9일까지 스페인 순례길 산티아고길을 33일간 걸었다. 아주 뒤늦게 스페인 팜플로냐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으며 썼던 기록을 정리해본다.
아침 8시 40분에서 오후 3시 40분까지 걸었다. 총 19.9km를 걸었다.
일기장을 들춰보니 아무 것도 쓰지 않은 날이다. 펜을 들기도 싫었다는 건 몸이 몹시 지친 경우 아니면, 몹시 재미있는 일이 많았던 날일텐데. 다행히(!) 기록했던 장보기 목록을 보니
맥주 2. 40 유로 / 와인 3.18유로가 적혀있었다.
재미있는 일이 많았던 날이었나보다.
아침이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바에 가면 동네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아저씨가 뭐라고 물으면 나는 다시 되물어보고, 알아들으면 대답하고, 못 알아들으면 더욱 크게 웃었다.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려면 연결어를 잘 구사하면 된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또한 버겁다면 웃는 게 연결사를 대체할 수 있다.
이 날 묵은 곳은 Albergue Espiratu Santo (카리타드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곳)였는데, 어머니 뻘로 보이는 분이 순례자 명부를 기록하더니 성모 마리아상이 있는 목걸이를 주셨다. "천사님"
저녁에는 한국 청년과 함께 토마토 파스타를 요리해서 먹었는데, 어마무시하게 많은 양을 다 먹어치웠다. 히피처럼 보이는 아저씨에게 파스타를 권유했는데, 괜찮다며 사양했다. 아저씨는 실을 엮으며 팔찌를 만들고 있었다. 파스타를 먹다가 와인 한 잔을 따라서 드렸다. 아저씨는 고맙다고 했다.
설거지를 하고나니 아저씨가 부른다. 산티아고길을 여덟번 째 걷는다고 한다. 그는 보물을 보여주듯 헝겊에 싸인 무언가를 꺼낸다. 네잎크로버다. 아니다. 세잎도 있고, 다섯잎도 있고 여러가지다. 크로버 중 잎이 여덟개 달린 것도 봤다고 하셨는데, 그 확률을 숫자로 말하셨지만 나는 아마 극히 낮은 확률일 거라 짐작했다.
아저씨가 선물이라며 내민 세잎크로버. 투명테이프로 거친게 만든 세잎크로버. 노란색 종이를 오려서 만든 산티아고의 상징인 화살표도 있다. 네잎크로버는 행운, 세잎크로버는 행복이라고. 고마운 마음에 뭔가라도 드리려고 했는데 복주머니도 이미 다 뿌리고 없다. 내가 이렇게 나누길 좋아한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넉넉해지는 게 신기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