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고스에서 깔싸디야(Calzadilla)까지
일관실기 첫 번째 프로젝트는 '발끝따라걷기' 2014년 11월 6일부터 12월 9일까지 스페인 순례길 산티아고길을 33일간 걸었다. 아주 뒤늦게 스페인 팜플로냐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으며 썼던 기록을 정리해본다.
레디고스에서 칼싸디야까지 걸었다. 새벽 7시 1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총 30km를 걸었다.
배경음악을 깔아야겠다.
레디고스에서는 뭔가 쓸쓸했다. 추웠고, 스페인 부부와 나만 알베르게에 머물렀다. 이 부부는 새벽에 일어나 짐을 싸고 있었다. 나도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새벽에 나왔는데 온통 깜깜했다. 별이 떠있었고 처음으로 미니 후레쉬를 사용했다. 차가 한 대도 없었다. 길을 걸으면서 몇 번을 멈췄다. 뒤돌아보기도 했다. 숙소로 돌아갈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음악을 켰다.
사하군에서 시장을 둘러봤다. 빵을 샀다.
역시 바게뜨.
그리고 커피를 마셨다.
사람들이 힐끔힐끔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후로도 계속 혼자 하염없이 걸었다.
너무 사람이 없어서 신기할 정도였다.
사하군을 넘어서 국도 옆 오솔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저 멀리 오솔길에 남자가 서성이다가 덤불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길이 없는데 왜 저길 들어갈까 했다.
급한 용무가 있으신가 보군.
하지만 내가 그 지점에 다다를 때까지
남성은 나오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뒤를 돌아보니 순례자들이 없다.
우선 걸었다.
도로가 오솔길보다 지대가 높았는데
저 멀리 천천히 오던 지프차가 크락션을 몇 번을 눌렀다.
차가 막히는 것도, 반대 차선에 차가 오는 것도 아닌데.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걸으면서 크락션이 울리는 차가 내 옆을 지날 때
동시에 나도 오솔길 덤불 안쪽을 힐끔 쳐다봤다.
서 있는 하얀 엉덩이.
변태다!
경보하듯이 걸음 속도를 높였다.
지프가 크락션을 울렸던 게 엉덩이를 봐서 그랬나.
어디에나 별 놈이 있군.
그 뒤로 숲길을 따라 또 하염없이 걸었는데
끝이 보이지 않아 거의 그만하고 싶었다.
숙소에 도착했다.
아주 조그만 마을.
작은 잡화점.
아저씨는 닫았던 잡화점 문을 열면서 쪽방으로 먼저 들어갔다.
그리고 푸른 가운을 입고 나타나셨다.
순간, 약사인 줄...
아저씨한테 치즈를 많이 샀다.
나는 찍을 생각 없었는데
아저씨가 사진 찍어가라고 부추겼다.
가운 입은 아저씨, 전문성이 드러났다.
가게에서 치즈와 빵을 사서 숙소로 돌아가려고 하니
바깥이 어두컴컴했다.
개가 컹컹 짖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시 만나요"라고 말하며
길을 나섰다.
아저씨가 문 밖까지 배웅한다.
총총 걸어가다 뒤를 돌아봤다.
아저씨가 어슴푸레한 가로등 아래 서 있다.
다시 총총 걷다 모퉁이를 돌기 전에 돌아봤다.
서성이던 아저씨가 손짓한다.
가는 모습을 봐주셨나보다.
어디에서나 좋은 사람이 있군.
수첩에 적힌 까미노 중간 결산
11월 6일~11월 21일(총 16일) 294.74 유로를 쓰다. 하루에 18.5유로 지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