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사디야에서 만시야(MANSILLA)까지
일관실기 첫 번째 프로젝트는 '발끝따라걷기' 2014년 11월 6일부터 12월 9일까지 스페인 순례길 산티아고길을 33일간 걸었다. 아주 뒤늦게 스페인 팜플로냐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으며 썼던 기록을 정리해본다.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해서 오후 2시 30분에 도착했다. 총 24.5km를 걸었다.
2016년이 밝았다. 2015년까지 산티아고길 기록을 마무리하고자 했지만
자꾸만 미뤘다.
피곤했고, 바빴고, 마음 저 편에선 뭔가 아까운 느낌이 들었다.
기록해두지 않으면 모래성처럼 흩어질 기억인데,
막상 기록하려니 괜한 그리움에 현실을 탓할 것 같고,
한 번 되새김질한 기억이 닳을까 그런 말도 안되는 이유로 글쓰는 걸 미뤘다.
길 위에서 한 장의 사진도 찍지 않은 날
"아침에 오전 6시에 일어났다. 걷는데 비가 왔다. 비를 맞으며, 그리고 마을 하나 없이 17km를 걷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판초 우의를 입고서 언제, 이렇게 오랫동안 온 몸으로 비를 맞으며 걸을 수 있었을까. 이 자체가 마냥 고마웠다. 그렇게 발토시는 이미 젖은 지 오래, 판초우의가 바람에 날리며 바지가 젖은 지 오래. 내 앞에 내 뒤에 아무도 없는 빗 속의 길을 걷자니 '순간'들이 움직였다" - 일기 中
길을 걷는다고 하면,
마음을 정리하거나, 생각을 이리저리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정말 그렇지 않았다.
그 많은 시간을 걸으면서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한 걸음 내딛는 발 끝만 바라보고 걷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문득 솟아나는 느낌을 마주할 때가 있다.
시선을 붙잡는 볼거리에 둘러싸인 환경이 아닌,
서로가 부딪히는 가까운 거리가 아닌 곳에 있다보면
내가 갖고 있었던 '어떤' 느낌이 '툭' 튀어나올 때가 있다.
운이 좋다면, '느낌'을 발견할 수 있다.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신문지를 박박 구겨넣은 등산화들이 화력(?)이 좋지 않은 난로 옆에 옹기종기 모인 모습들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귀엽기도 하고, 뭔가 짠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이렇게 살아가는 건가'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만든..
사람들은 서로 다른 속도로 걷다가 이렇게 우연히 숙소에서 다시 만난다.
"무릎 괜찮냐"고 안부를 묻는다.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다"고 답했다.
리베로 아저씨는 솜씨를 발휘해 파스타를 뚝딱 만들고, 한 부부는 와인을 사왔다.
사람들이 이탈리아어로, 일본어로, 프랑스어로, 스페인어로, 영어로 말한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건 분명한데 그 끝에 항상 웃는다는 점에서 언어가 같다.
나도 덩달아 많이 웃었다.
알베르게 5유로, 빨래 6유로, 카페 3.40유로, 저녁 5유로, 쥬스 1,42유로
# 2016년에도 이어서 끝까지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