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로가에서 폰세바돈(Foncebadón)까지
일관실기 첫 번째 프로젝트는 '발끝따라걷기'. 2014년 11월 6일부터 12월 9일까지 스페인 순례길 산티아고길을 33일간 걸었다. 아주 뒤늦게 스페인 팜플로냐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으며 썼던 기록을 정리해본다.
아침 8시에 출발해서 오후 2시 35분에 도착했다. 총 21.4km를 걸었다. 후반부에 걸을 땐 비바람이 몰아쳤다. 어젯 밤 좁은 방에서 낄낄거리며 웃고 떠들다보니 아스트로가를 떠나기가 싫었다. 당초 라바날까지 약 21.4km만 걸으려했지만 어쩌다보니 폰세바돈까지 걷게 됐다.
감각이 살아있는 33일
감각이 살아있는 33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처럼 세수하고, 사과 한 알 물고 짐 챙기는 일의 반복이었지만 약 6kg 정도의 배낭 무게를 매 걸음 느껴야 했고, 웃는 사람들의 얼굴을 자주 봤고, 손인사도 많이 했다. 공간이, 자신이 처한 상황이 달라진다는 건 행동도 자연스레 변하는걸까. 원래 이러한 모습이 사람의 본질인가. 이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산티아고길을 걷기 전에도, 산티아고길을 걸을 지 꽤 오래된 지금도 출근할 때마다 콩나물 시루처럼 꽉 껴 있는 사람들의 무표정에서 '검은 도화지'가 떠오른다. 어깨를 밀치며 드러내는 미묘한 신경전은 참 부질없어 보이다가도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누군가를 관찰하지만 나도 그 안에 포함돼 있다.) 순례길을 걸었다고 해서 삶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진 않았다. 그 때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느끼고, '싹싹해지는' 순간들을 마주했지만 그게 몸에 각인되진 않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위안은 길을 나설 때마다 들었던 "All Of The Stars"를 어디선가 우연히 듣게 되면 괜히 발걸음에 리듬감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과장이지만 그 정도로 몸이 그 때를 기억하고 혹은 기억하려는 것 같다.) 삶의 태도를 송두리째 바꾸진 못해도, 이럴 때마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견주어 보게 된다. '그래, 각자 걷는 길이 다른 거지', '세상에 꽤 좋은 사람들이 많아', '작게나마 무언가를 해보는거야'라는 지나치게 단출한 깨달음이 줄줄이 소세지처럼 떠오른다.
비바람이 엄청 불었다. 내 몸을 이기지 못할 정도였다. 비틀비틀. 더구나 신발과 에어로빅 토시도 젖어서 발걸음을 더욱 붙잡았다. 그렇게 꾸역꾸역 걸어서 도착한 철 십자가상. 나는 하늘 다람쥐가 되었다.
참고로 Albergue Monte Irago 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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