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콧노래를 불러라

폰세바돈에서 푼토봉(Punto Alto)을 지나서

by 마감인간
일관실기 첫 번째 프로젝트는 '발끝따라걷기'. 2014년 11월 6일부터 12월 9일까지 스페인 순례길 산티아고길을 33일간 걸었다. 아주 뒤늦게 스페인 팜플로냐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으며 썼던 기록을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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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일 중반 부에 들어서면서 사실 기록을 많이 하지 않았어요. 산티아고 길을 걷기 전에 두 달 정도 스페인만 여행했는데, 그 때도 많은 정보들을 기록하진 않았죠.(지금은 약간 후회되기도 합니다만 ㅎㅎ) 멍 때리면서 동네사람인양 어슬렁거리던 게 전부였어요. 그래서 일기 쓴 내용을 보태 그 때를 떠올리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그 때 들었던 음악, 분위기, 날씨 같은 게 말이죠.


이 때는 걸을 때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제가 걷는 건지, 바람이 저를 미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특히 판초 우의를 입고, 스틱 두 개를 들고 걷다가 우의가 뒤집히면 '왜 내가 걷는 건지' 회의가 들었습니다. 어떤 대단한 깨달음 혹은 사건으로 인한 게 아니라 '우의가 바람에 자꾸 뒤집혀!!!' 이런 사소한 이유에서 회의가 든다는 게 모양 빠지지만 정말 그렇더라고요. 요즘 회사 생활하면서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5년뒤, 10년 뒤 미래를 가늠하라 오늘 아침, 눈 떴을 때 내가 어떤지 놓칠 때가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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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들 잘 지내시죠


찰스 아저씨는 제게 많은 생각들을 던져준 분입니다. 평소에 '알고 있던' 좋은 말들을 어느 정도 인생을 살고, 우여곡절을 겪은 사람의 입을 통해 직접 들으니 와닿더라고요. 이날 따라 푼토봉을 내려올 때 진흙길, 돌길,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야 했는데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어요. 무릎도 말썽이라 비틀거리며 내려가는 데 찰스 아저씨는 항상 물어보더라고요. 괜찮냐고. 약을 먹었는지, 도와줄 건 없는지. 그러한 배려 덕분에 무사히 내려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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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하늘다람쥐 같은...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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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아저씨입니다. 독일에서 사는 분인데 엄청 유쾌한 분입니다. 술을 좋아하셔서, 한국에서나 가능한 줄 알았던 '원샷'이 한국만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준 분입니다. 와인 마실 때마다 어찌나 권하던지, 그 때는 그게 곤혹스러웠지만 지금은 하나의 추억이 되었어요. 밤에는 코를 많이 골아서 잠을 못 이룬 적이 많았죠. 이건 추억이 되기엔...아저씨는 걷는 일에 확실히 자신의 메시지를 지닌 분입니다. 이미 스위스길도 걷고, 여러 루투의 길들을 걸어본 경험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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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그리고, 흥얼거림


우여곡절 끝에 알베르게에 도착했어요. 무지개가 챵! 정말 예뻤어요. 왜 걸을까 후회했다고 일기에 적어놓았던데 그 문단의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무사히 내려왔다. 까미노 자체가 죽을 맛이었지만 무슨 일이든 하면된다는, 결국 어떤 식으로든 목적지에 당도할 수 있다는 걸 체화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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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짐을 정리하고 샤워장에서, 숙소에서 길 위에서 만났던 이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각자 걷다가 이렇게 한 장소에서 다시 만나는 건 더 없이 반가운 일입니다. 찰스 아저씨는 걸을 때 가끔 허밍으로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숙소에서 짐 풀 때도 콧노래를 불렀어요. 세탁실 가는 길에 리베로 아저씨가 흥얼거리며 빨랫감을 갖고 왔다갔다 했어요. 사스키아도 콧노래를 부릅니다. 한 장소에서 콧노래 부르는 사람을 서 너명을 볼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지요.



아참, 찰스 아저씨게 제게 했던 말은요.


"너의 Passion을 따라 걸으라"



이 날 길 위에서 자주 들었던 음악입니다.



아침 3.50유로

알베르게 5유로

커피 3유로

장보기 5.34유로

세탁 2.50유로

커피 4.40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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