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세바돈에서 푼토봉(Punto Alto)을 지나서
일관실기 첫 번째 프로젝트는 '발끝따라걷기'. 2014년 11월 6일부터 12월 9일까지 스페인 순례길 산티아고길을 33일간 걸었다. 아주 뒤늦게 스페인 팜플로냐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으며 썼던 기록을 정리해본다.
걷는 일 중반 부에 들어서면서 사실 기록을 많이 하지 않았어요. 산티아고 길을 걷기 전에 두 달 정도 스페인만 여행했는데, 그 때도 많은 정보들을 기록하진 않았죠.(지금은 약간 후회되기도 합니다만 ㅎㅎ) 멍 때리면서 동네사람인양 어슬렁거리던 게 전부였어요. 그래서 일기 쓴 내용을 보태 그 때를 떠올리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그 때 들었던 음악, 분위기, 날씨 같은 게 말이죠.
이 때는 걸을 때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제가 걷는 건지, 바람이 저를 미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특히 판초 우의를 입고, 스틱 두 개를 들고 걷다가 우의가 뒤집히면 '왜 내가 걷는 건지' 회의가 들었습니다. 어떤 대단한 깨달음 혹은 사건으로 인한 게 아니라 '우의가 바람에 자꾸 뒤집혀!!!' 이런 사소한 이유에서 회의가 든다는 게 모양 빠지지만 정말 그렇더라고요. 요즘 회사 생활하면서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5년뒤, 10년 뒤 미래를 가늠하라 오늘 아침, 눈 떴을 때 내가 어떤지 놓칠 때가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을요.
찰스 아저씨는 제게 많은 생각들을 던져준 분입니다. 평소에 '알고 있던' 좋은 말들을 어느 정도 인생을 살고, 우여곡절을 겪은 사람의 입을 통해 직접 들으니 와닿더라고요. 이날 따라 푼토봉을 내려올 때 진흙길, 돌길,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야 했는데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어요. 무릎도 말썽이라 비틀거리며 내려가는 데 찰스 아저씨는 항상 물어보더라고요. 괜찮냐고. 약을 먹었는지, 도와줄 건 없는지. 그러한 배려 덕분에 무사히 내려왔어요.
역시 하늘다람쥐 같은...OTL
피터 아저씨입니다. 독일에서 사는 분인데 엄청 유쾌한 분입니다. 술을 좋아하셔서, 한국에서나 가능한 줄 알았던 '원샷'이 한국만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준 분입니다. 와인 마실 때마다 어찌나 권하던지, 그 때는 그게 곤혹스러웠지만 지금은 하나의 추억이 되었어요. 밤에는 코를 많이 골아서 잠을 못 이룬 적이 많았죠. 이건 추억이 되기엔...아저씨는 걷는 일에 확실히 자신의 메시지를 지닌 분입니다. 이미 스위스길도 걷고, 여러 루투의 길들을 걸어본 경험이 있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알베르게에 도착했어요. 무지개가 챵! 정말 예뻤어요. 왜 걸을까 후회했다고 일기에 적어놓았던데 그 문단의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무사히 내려왔다. 까미노 자체가 죽을 맛이었지만 무슨 일이든 하면된다는, 결국 어떤 식으로든 목적지에 당도할 수 있다는 걸 체화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이 날 짐을 정리하고 샤워장에서, 숙소에서 길 위에서 만났던 이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각자 걷다가 이렇게 한 장소에서 다시 만나는 건 더 없이 반가운 일입니다. 찰스 아저씨는 걸을 때 가끔 허밍으로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숙소에서 짐 풀 때도 콧노래를 불렀어요. 세탁실 가는 길에 리베로 아저씨가 흥얼거리며 빨랫감을 갖고 왔다갔다 했어요. 사스키아도 콧노래를 부릅니다. 한 장소에서 콧노래 부르는 사람을 서 너명을 볼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지요.
아참, 찰스 아저씨게 제게 했던 말은요.
"너의 Passion을 따라 걸으라"
이 날 길 위에서 자주 들었던 음악입니다.
아침 3.50유로
알베르게 5유로
커피 3유로
장보기 5.34유로
세탁 2.50유로
커피 4.40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