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걸었는데, 왜 허무해지는걸까.
오늘 티비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 '산티아고'편이 방영됐다. 2년 전 산티아고 길 순례를 떠올렸다. 산티아고 길을 떠올리면 양가적인 기분이 든다. 하나는 그 순간을 다시 만끽하고 싶다는 점과 또 다른 하나는 그 끝의 기분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을 때 나는 스페인 친구와 함께 당도했다. 그녀는 휴가를 맞아 순례길을 쪼개서 걷는 친구였는데, 성당이 멀리 보일 때부터 우린 들떠서 걸었다. 성당에 도착해서 그 친구는 담배부터 태웠다. 여하튼 나는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해서 약 닷새정도 그 도시에 머물렀다.
저렴한 숙소, 깔끔한 숙소를 옮기며 마냥 시간을 보냈다. 길 위에서 만났던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졌던 시간, 산티아고의 12월 날씨는 흐리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일쑤였다. 그 때 몇 백 킬로미터를 걸었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했지만 그 길이 끝났다는 데서 허무함이 밀려왔다. 일기도 쓰지 않았다.
아마 누군가와 함께 그 시간을 나눴다면 축제같은 분위기를 느꼈을테지만 혼자있는 시간이 꽤 길었다. 숙소에서 무료 와이파이 되는 곳에서 한국 예능을 보고, 드라마를 봤다. 한국에 돌아가면 취직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글을 쓰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애당초 길을 걷겠다고 마음 먹은 건 아니었지만, 길을 걸으면서 그 길 끝에는 내가 어느정도 변화의 단초를 마련할거라는, 혹은 나라는 사람이 많이 변해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가졌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길 끝에 마주한 사람은 역시 길을 걷기 전의 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래도 변하긴 하니까. 그 부분에 일말의 기대감을 품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다. 아마 그 때 석 달의 스페인 여행 기간 중 가장 우울했던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검색해보니까 산티아고 블루라는 게 있다고 해서, 이 또한 나만 특별하게 겪는 경험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염없이 산티아고 도시를 걸어다녔고, 어제 갔던 서점, 엊그제 갔던 기념품 가게를 들락날락했다. 무교이지만, 성당 미사볼 때 멍하니 앉아있기도 했다. 당시 서점에서 'Camino del Norte' 책을 사면서 생각했다. 무릎이 아파서 정말 이러다가 무릎 나가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다음에 또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책을 샀다.
지금 회사를 다니면서도 '회사 우울증?' 같은 걸 느낀다.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은 축복이고, 행운이라고 생각하지만 난 그 쪽이 아니다. 오히려 하기 싫은 일을 쳐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중인데, 앞으로 영영 못 찾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어차피 이러나 저러나 허무함이 생긴다면, 걷고 싶을 때 걸었던 것처럼 우선 걸어야 하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