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_혼자 걸어도 되는걸까

팜플로냐(Pamploña)에서 머물기

by 마감인간
일관실기 첫 번째 프로젝트는 '발끝따라걷기' 2014년 11월 6일부터 12월 9일까지 스페인 순례길 산티아고길을 33일간 걸었다. 아주 뒤늦게 스페인 팜플로냐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으며 썼던 기록을 정리해본다.

마드리드(Madrid)에서 기차를 탔을 때만 해도 여행자의 마음이었는데 막상 팜플로냐(Pamploña)에 도착하니 순례자의 마음이 된다. 종교가 없지만 워낙 순례자길에 대한 이야길 많이 들어선 지, 어쨌든 장기간 걷는다는 일에 긴장한 탓인지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팜플로냐의 기차역에서 현지인에게 물어 물어 시내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내가 가려는 첫 공립 알베르게 헤수스 이 마리아 알베르게(Jesus y Maria Albergue)가 있을 법한 언저리에서 내렸다.


"¿Hay una Albergue abierto?"(문을 연 알베르게인가요?)


서투른 스페인어이지만 마주치는 현지인 혹은 순례자에게 자주 물어본 질문이었다. 순례자길 성수기(?)로 알려진 7~8월을 넘어서 비수기인 동계로 접어드는 시점이라 문을 연 알베르게를 찾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이미 순례자를 위한 온라인 카페에서는 동계에는 문을 닫는 알베르게가 많아 자칫 잘못 계산하면 몇 십킬로미터씩 걸어야 한다는 엄포가 더욱 떠오르기도 했다.(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적이 없었다)


팜플로냐 도심에 들어섰는데도 공립 알베르게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시에스타를 넘긴 시각이라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짧은 스페인어로 공립 알베르게 위치를 물었고 혹시 몰라서 사설 알베르게 위치까지 물었다. 때마침 자전거 여행하는 독일인이 센터에 들어와서 이것저것 물었다.(이것저것이라함은 정확히 뭘 물어본 건지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독일인과 짧게 대화를 나눴는데 자기네 나라에서부터 스페인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다고 했다. 너무 대수롭지 않게 이야길 해서 나도 동아시아 대륙이 자전거 여행하기에 적격인 '기회의 땅'처럼 잠시 느껴졌다.


IMG_5755.JPG 스페인 팜플로냐에 위치한 공립 알베르게 Jesus y Maria Albergue

나는 공부로 1등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등교, 출석, 출근으로 1등을 해본 적이 꽤 많다. 오 분정도만 일찍 나서면 덜 붐비기 때문이기도, 느긋하게 걸어서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해서. 역시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일빠'였다. 잠시 불안감이 엄습했다. 동계라서 이렇게 사람이 없는건가. 당장 내일부터 길을 떠나야하는데 동행없이 그냥 떠나는건가. 길을 헤매면 어떡하나. 담대한 마음을 유지하려 애쓰며 마음 붙일 곳인 침낭을 펴고 애벌레마냥 잠시 누웠다. 유심칩을 끼운 아이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나름의 몸보신으로 근처 버거킹에서 4.60유로짜리 버거세트를 먹으러 나갔다.팜플로냐도 볼거리가 많은 곳인 것 같았는데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기저기 혼자 걸어다니니 사람들이 힐긋힐긋 쳐다보는 눈초리가 느껴졌다.



IMG_5758.JPG 아침 7시에 처음 길을 나서며 찍은 인증샷.

어찌됐든 다음 날이 밝았다. 알베르게에 머문 이들 몇몇도 부랴부랴 짐을 쌌다. '노란색 화살표만 따라가면 된다고 했지'라며 길바닥과 전봇대를 주시하며 걸었지만 날이 어두워 화살표가 눈에 띄지 않았다. 공원을 가로질러 가다가 화살표를 놓쳤다. 부부처럼 보이는 듯 분들이 나를 불러 세운다. 'No', 'Aquí' 등이 드문드문 들리는 것으로 보아 이 길이 아닌 듯 들렸다. 다른 방향을 손짓하며 "Buen Camino"라고 말한다. 건널목에서 화살표를 잃고 멀뚱히 서 있자 신호 대기 중인 차에 한 여성이 창문을 열고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손짓한다.


난 또 생각했다. '이 분들도 천사님?!' 천사님들을 뒤로한 채 화살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금세 가방이 무거웠다. 순례길에 앞서 지난 두 달간 여행동안 입었던 겉옷 하나를 분리수거함에 드렸다. 조금 가벼워졌어.


#돌이켜보니


2014년 11월 6일 일기 中


"오스트리아 출신 로쟈 아저씨를 만났다.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기차를 타고 팜플로냐에 왔다고 했다. 이번이 두번째란다. 겨울 카미노라서 알베르게에 열댓명 밖에 없다. 그래도 좋다. 다들 와인을 마시고, 노래를 부른다. 내일은 25km를 걸어야 하는데 힘든 하루가 될 것 같다. 어떤 일이든 변화와 시작이 있다는 건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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