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로냐에서 뿌엔떼 라 레이나까지
일관실기 첫 번째 프로젝트는 '발끝따라걷기' 2014년 11월 6일부터 12월 9일까지 스페인 순례길 산티아고길을 33일간 걸었다. 아주 뒤늦게 스페인 팜플로냐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으며 썼던 기록을 정리해본다.
새벽 6시 40분에 출발해 오후 1시 10분에 도착했다.
팜플로냐 도심 외곽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길에 들어서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열심히 걷는다고 걸었는데 시계를 보면 한 시간 걸었다. 보통 하루에 7시간여 걸었으니 절반에 훨씬 못 미치는 거리였다. 페르돈봉(Alto de Perdón)에 오르려니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마드리드에서 구매한 판초우의를 벌써 개시해야 하나'라며 버텨보려 했지만 산길에 접어들자 비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바람에 날아가는 우의를 잡으랴, 사용법을 배웠으나 영 몸에 익지 않은 스틱을 짐처럼 들고가랴 버거웠다.
때마침 헤수스 이 마리아 알베르게에서 잠시 얼굴을 봤던 호세 아저씨가 멀리서 오는 게 보였다. 호세 아저씨는 스페인 북부 지역에서 사는 분이다. 휴가를 쪼개서 순례길을 여러 번 왔다고 했다. (유럽에서 산티아고길을 걷는 사람들은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나흘에서 엿새가량 휴가를 내고 산티아고길을 쪼개서 걷는 분들이 꽤 많았다) 호세 아저씨는 길 위에서 참 여러 번 인연이 닿았다. 까미노 중간에 속도를 내면서 걸으면 '그렇게 빨리 걸으면 다친다'(의역)고 조언해주기도, 식물박사님이라 지천에 깔린 풀들의 꽃, 허브, 식물 이름을 줄줄 꾀고 있었다.
홀로 비를 맞으며 산길을 걸으려니 뭔가 좀 무서웠는데 호세 아저씨와 한국인 여성 분을 만나 함께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도 쉽지 않았다. 워낙 걷는 속도가 빨라서 따라가는데 급급했다. 페르돈봉에 오를 때까지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걸어갔다. 처음에 풍경을 즐기면서 걸으려 했지만 배낭은 무겁고, 땀은 나고, 안경에 김이 서리니 눈에 뵈는 것 없이 그냥 올라갔다.
진흙탕길을 겨우 올라가니 내려갈 일이 막막했다. 내리막길은 산사태가 난 뒤인 것처럼 온통 돌길이었다. Perdón은 '용서', '면죄'의 뜻인데 나는 그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왜 걷기로 마음 먹었는지에 대해 스스로 용서를 구해야 할 판이다'라고 생각했다. 발 빠른 사람들 덕분에, 고생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두 번째 공립 알베르게인 'Albergue Padres Reparadores'(5유로)에 도착했다. 출발한 지 7시간 만이었다. 남녀 공용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고 나니 쌀쌀한 기운에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서 마셨다. 0.75유로의 안락함.
#돌이켜보니
식물박사 호세 아저씨를 보면서 배우 송재호 님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작은 체구지만 야무진. 송재호 님을 검색했다. 이럴 수가. '야생생물관리협회장'이다. 소오름. 식물박사와 야생생물관리협회장의 닮은 꼴이라니.
사람들은 발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했다. 새벽부터 바셀린을 듬뿍 바르고 양말을 신었는데 역시 물집이 잡혔다. 바늘에 실을 꿰어 물집을 터뜨렸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솔직한 나의 발. 발바닥에도 불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