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엔테 라 레이나에서 에스떼야(Estella)까지
일관실기 첫 번째 프로젝트는 '발끝따라걷기' 2014년 11월 6일부터 12월 9일까지 스페인 순례길 산티아고길을 33일간 걸었다. 아주 뒤늦게 스페인 팜플로냐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으며 썼던 기록을 정리해본다.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해 오후 2시경에 에스떼야에 도착했다. 21.9 km를 걸었다.
프랑스길을 걷다보면 외국인들을 만날 때마다 듣는 질문은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이 (산티아고길) 오는 거니?" 여행지라기엔 육체적 노동이 뒤따르는 곳에서 한국 사람들을 너무나 자주 만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걸었던 11월에는 비수기라 한국인이 많이 없었는데도 그새 내 앞으로 혹은 내 뒤로 많은 한국인들이 길을 걸었거나, 걷고 있었겠지.
장강명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읽었다. 이 곳이 아닌 저 곳의 삶을 꿈꾸는, 헛된 갈망일지라도 이 곳의 절망을 벗어나기 위해, 이 곳을 떠나는 계나의 이야기. 자주는 아니어도 길 위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대개 청년이었다. 길을 걷는다고 해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았지만 작은 의미라도 부여하지 못할 일도 아니었다. 한국의 삶이라는 게 어찌보며 '의미의 결핍' 속에 사는 게 아닌가.
한국을 떠나기 전 나의 삶의 패턴을 봐도 그랬다. 삶을 '의미'로 채우겠다고 선언하기엔 너무 철딱서니없이 느껴졌다. 겨우 보일까 말까한 실낱같은 의미를 찾으려하기보다 내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보이는 것들에 익숙해져갔다. 2호선에서 3호선을 갈아탈 땐 지하철의 1-1에서 내려야 해. 출구와 가까운 쪽은 8-2지. 지하철에서 버스를 환승하려면 추가 요금내지 않도록 30분 내로 움직여야 해. 다음 지하철은 신도림행인가. 앱을 켜서 보자.
'효율의 과잉'은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때론 해야할 일이 더 생겼다. 구태여 하지 않아도 될 일들로 채우며 패턴화된 삶에 나를 길들였다. 의미를 찾으면 '진지병'에 걸린 것 같고, 그래 가볍게 대충 살면 되는거지. 이런 사고방식에 익숙해졌다. 그러다 화살이 엉뚱한 데로 향할 때도 생긴다. 지하철을 놓치면 다음 지하철을 기다리는 도중에도 '좀 더 서둘렀어야 했는데'라며 나를 질책한다.
사람 쉽게 변하지 않는다.
마음의 안식, 평온의 상징처럼 알려진 산티아고길 위에서도 평온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아침잠을 달게 자는 순례자들을 뒤로하고 새벽에 길을 나섰다. 걸으면서도 해야할 게 많았다. 아무도 없는 길 위의 새벽 풍경을 보며 '아'라는 짧은 탄식과 함께 나는 왼쪽 주머니에 든 아이폰을 꺼내들었다. 찍자. 우선 찍어둬야 해. 걷다가 찍고 몇 발 걷다가 '여기 풍경이 더 나은가'하면서 주머니에 넣어둔 아이폰을 다시 꺼내서 카메라 앱을 터치해서 이리저리 앵글을 잡은 뒤 사진을 담는다.
'아'하고 내뱉었던 탄식은 '아'하고 짧은 한숨으로 바뀌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둘째 날이니까 몸이 무거웠다. 등산화 사이로 점핑해서 들어가는 자잘한 돌들이 신경에 거슬렸다. 그냥 걸으면 된다는데 왜 이렇게 할 일이 많은 걸까.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뺐다가 넣었다가, 등산화를 벗어 돌을 털어내고 다시 신었다가, 몸에 붙지 않은 스틱을 짚고 다니다가 들고다니다가. 뭔가 뒤엉킨 것 같은데 나는 습관적으로 어떤 패턴을 만들고 있었다.
풍경을 보고 싶었지
2014. 11. 8 일기 中
"고개를 들면 넓은 들판과 하늘이 보이는데도 나는 내 등산화만 바라보며 걸었다. 자잘한 돌들 때문이다. 이렇게 마음의 여유 없이 걷는 게 까미노인가 싶기도 하고, 정말 끝까지 걸어야 싶기도 하다. 아고, 의미없다. 그래도 지나가는 사람마다 'Buen Camino'라고 인사를 건네면 나도 응수한다. 그렇게 기대사는 건가."
#돌이켜보니
까미노 초기에는 최대한 많은 것들을 남기자는 주의였다. 그러다 중반에는 귀차니즘으로, 후반에는 (모든 풍경이 비슷하게 보일 때쯤) 거의 사진을 찍지 않았다. 사진폴더를 뒤적이다보니 초반에 찍은 사진들 중 '정말 이게 내가 찍은 사진인가' 싶은 낯선 사진들이 수십 장이다. 정녕 길을 걸으며 수십 차례 멈춰섰던가. 풍경을 보고 싶었는데 그 땐 카메라를 통해 보는 풍경이 좋았나보다. 특히 이 개는 거의 조증 수준이었다. 혼자 길을 걸으며 웃을 일이 없는데 이 개가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걸 찍다가 웃었다는 걸 방금 기억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