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2일/ 나는 어쩌다 비혼주의자가 되었나
오늘은 소신있는 하루였다.
무언가를 해야할 때 하지 않으면, 간혹 '소신'으로 여겨진다. 나는 어쩌다 '비혼주의자'가 되었는가. 공적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넘어온 사람은 이런저런 얘길하다가 가볍게 물어본다. "결혼하셨어요?" "남자친구는요?" 대답은 "결혼하지 않았고, 남자친구는 있어요." 그 다음의 질문은 "남자친구는 얼마나 만났어요?" 나는 "오래 만났어요" 그 사람은 "근데 왜 결혼 안 해요. 할 때되지 않았어요?" 나는 "이유는 뭐. 그런가요?"하고 되묻는다. 여하튼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의 생활방식은 어떤 결단을 내린 자의 이야기로 귀결된다고 해야하나.
나는 결혼을 예찬하지도, 결혼을 비관하지도 않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다. 여기에 낙관도, 낙담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무언가를 해야할 때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해석된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서너줄의 긴 영어문장을 매끄럽게 번역하기도 어려운데, 삼십년 넘게 산 인생이 단편적으로 번역될수도 있나 싶다. (아냐, 그럴 수도 있지.) 비단 결혼 뿐이랴. 공부해야할 때 공부하지 않았을 때, 취직해야 할 때 취직을 하지 않았을 때(못할 때) 해석의 여지는 도처에 깔려있다. 이렇게 인생을 살다보면 나의 소신은 지켜나가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기도 하나보다.
회사 동료 중 한 분이 퇴사 인사 차 들렀다. 그 분과 대화를 자주 나누진 않았지만 가끔씩 커피 한 잔을 마시면 이런저런 얘기가 쉽게 나왔다. 그리고 그 분은 말할 때마다 미세하게 목소리가 떨렸는데 그게 좋았다. 컵을 씻을 때도 어찌나 정성스레 씻는지 일상의 템포가 왈츠같았다. 이직하는데 주말 부부 생활을 해야한다고 했다. 그간 회사 생활하면서 취미로 배우던 일에서 멀어질 것 같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리고 아이들을 자주 볼 수 없을텐데, 라며 말 끝을 흐리기도 했다. 나야말로 그 분을 해석했다. 가장, 아빠, 가장, 아빠, 가장, 아빠. 이 테두리를 좀체 벗어나지 못했다.
노래선물 :)
kings of convenience - misr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