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반적인 흐름이 있는 생애주기보다 약 5년 정도 늦게 움직이는 편이다. 그 때 당시엔 크게 동의하지 못했던 부분을 5년 정도 흐르고 나면 '아, 이게 중요하네'라는 실체적 깨달음을 얻는다. 이를테면 한창 일에 몰입한다는 신입사원 시절에는 몰입하지 않다가 약 5년 정도 흐르고 난 시점에 '몰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이럴 땐 다른 사람들과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나에 대한 특별함을 느끼기보다 보편적이지만 다소 느린 방식으로 살아가는 나에 대한 안도감을 느낀다.
어제 하루를 정리하며 느꼈던 생소함은 10년 뒤 계획을 세우는 데 머뭇거렸다는 점. 10~20대초반까지만 해도 실현하기 어려울 지언정 30대, 40대, 50대의 삶을 쭉쭉 그래프로 그렸다. 다가올 미래를 기대했고, 내가 헤처나가야 할 수많은, 소소한 장애물을 환영했다. 30대에 들어선 이후 1년 단위로만 삶을 구성하다보니 40대, 50대를 꿈도 꾸지 않았다. 문득 인생 그래프를 그렸는데 뭘 계획해야 할 지 막막했다. 약간 낯설었고, 이제 나는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 다이어리를 덮었다.
나는 손이 작다. 어릴 적 소소한 장애물 중 하나였다. 과자를 나눠 먹을 때, 내 몫으로 가져올 한 주먹의 과자가 적었다. 그래서 별 같은 손을 쫙쫙 펴서 과자를 최대한 많이 가져오려했다. 이 패턴으로 여적 살아왔는데 무리데쓰. 하고 싶은 일을 똑같은 무게감으로 해낼 수 있다는 건 욕심이다. 일하고, 주말에는 또다른 사람을 만나 무언가를 기획하고, 퇴근 후 글감을 찾다가 카페에 가서 글쓰고, 또 다른 시간에는 수업을 듣고. 마음 한 구석에서는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고 싶고. 그렇다. 이 모든 걸 안고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