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살라망카에서 첫 날이다. 쉽지 않은 첫 날이라 그런지 나는 98유로를 써버렸다.물론 교통비와 숙소비가 절반이 차지하지만, 그 전에 사지 않았던 옷이랑 책을 사버렸다. 아마 살라망카에서 보내는 나머지 3일은 굉장히 배고플 것 같다. 더구나 생판 모르는남자 2명(그것도 건장한 외국청년분들)이랑 한 방에서 자야 한다는 게 좀 불편하다. 나는 여성 도미토리인줄 알고 예약했는데 혼성이었나보다. 이 친구들은 아예 나를 신경도 쓰지 않는 분위기이지만, 그래도 나는 스스로 혼자서 신경을 쓰고 있다.
살라망카에 볼 게 많은 줄 알았는데 젊은이가 전부인가 보다. 도시의 규모는 이전의 톨레도에비해서 크지만 볼 게 많지는 않다는 느낌. 나는 당연히 볼 게 많은줄 알았는데 젊은이와 살라망카 대학에 낚였다. 매일같이 휴식을 취하고, 쉬어야 한다며 지내고 있는데 이 곳 살라망카에서도 그럴 것 같다. 뭐라도 배우면 좋으련만. 예산 앞에서 무력해진다. 그래도 할 일이 생겼다. 스페인어책을 벼르던 걸 샀기 때문이다. 함정은 한국보다 싼 것 같지도 않다.
그저 서점을 다니고 알 수 없는 책을 보면 안정을 찾는다. 낯선 곳에서도 어떻게든 익숙한 생활방식을 취하려 한다는 점에서 안정과 불안정의 균형을 찾고자하는 일종의 발악같은 게 아닐까 싶다.자물쇠가 박살났다. 자물쇠를 습관화하기 위해 싱글룸에서도 잠금질 했건만 번호키가 있는 몸통과 고리를 거는 부분이 너무나 맥없이 톡하고 떨어졌다. 역시 다이소답다는 생각을 했다.그래서 본의 아니게 나는 열쇠 자물쇠를 샀다. 스페인에서 2개를. 머리와 몸통이 분리될 일은없을 정도로 고지식한 자물쇠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2개를 샀다. 하나에 2.88유로였다.
여기선 대학생들이 한국과 마찬가지로 옆구리에 파일을 끼고 다닌다. 어쩌면 우리나라 대학생보다는 털털해보였다. 글쎄.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다들 취직 준비하거나 알바를 해서 그런지 몰라도 청계천이나 서울시청 광장에 앉아서 수다 떠는 일은 일상의 한 부분이라기 보다는 이벤트성이 강해보였다. 하지만 여기 1992년 마지막 투우 경기를 벌였다는, 그리고 욕 먹는 총통의 동상이 있다는 이곳 마요르 광장 바닥에는 '맥주 한 캔도 들지 않고' 그저 옹기종기 모여앉은 젊은이들이 많다는 게 눈길을 붙잡는다. 무얼 마시기 위한 게 아닌 서로 앉아서 얘기한다.
무슨 얘기를 할 지 궁금했지만, 아마 시대를 걱정하진 않을 거다.(물론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시덥지않은 일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하지 않을까. 다들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무언가를 이야기한다는 데서 부러움이 컸다. 한국에는 시청 광장이 있고, 광화문 광장이 있다. 처음에 그게 무슨 광장이냐며 비판하는 목소리에 동의하지 못했다. 졸속인지, 미관이 문제인지, 정치적 맥락인건지. 그렇게까지 분노해야만 할까 싶었다.
살라망카에서 한국의 광장은 '보여주기식 광장'이라는 걸 체감했다. 동네 구석마다 있는 공원과 플라자를 본다. 살라망카에서만 해도 골목을 헤매다보니 무슨 플라자가 그렇게 많은지, 그 곳에는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와 아빠들이 많았다. 늘 옹기종기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광화문과 시청 광장은 그에 비하면 나들이를 위한 '목적지'이지, 일상을 향유하는 '광장'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