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_바보들의 행진

로스 아르꼬스에서 비아나(Viana)까지

by 마감인간
일관실기 첫 번째 프로젝트는 '발끝따라걷기' 2014년 11월 6일부터 12월 9일까지 스페인 순례길 산티아고길을 33일간 걸었다. 아주 뒤늦게 스페인 팜플로냐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으며 썼던 기록을 정리해본다.

아침 7시에 출발해서 오후 2시 반이 넘어서 도착했다. 총 28.1km를 걸었다.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까지 660.6km가 남았다.


산티아고 길을 걷고 난 순례자들을 마드리드에서 만났을 때 그들은 발 상태가 어쨌다느니보다 죽이 잘 맞는 순례자들끼리 항상 장을 봐서 비노(vino, 와인)를 마셨다느니, 중년 부부가 엄청 잘 걸었다드니, 생각보다 미국인이 없다느니 하는 등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내가 길을 나서기 전이라면 사람들이 많이 걸을 때였다. 나는 걸을 때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너무 오랜 시간 혼자 걷고 있다고 느낄 때쯤 한 번씩 휙휙 뒤를 돌아봤다.


IMG_5876.JPG 작은 마을 Sandol


아무도 없네. (다행이다, 아냐 좀 무서운데)


잘못된 길은 돌아가면 된다


이 날 목적지는 로그로뇨(Logroño)였다. 실패했다. 길을 걷는 도중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들과 손짓발짓으로 이야기하다 노란 화살표를 놓쳤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잘못 들어섰는지 몰라도 네덜란드 여자친구를 만나면서 정신이 팔렸다. 그 친구는 키가 참 크고 조용히 말하는 친구였다. 같이 걷다보니 식물박사 호세 아저씨도 합류했다. 셋이 영어로, 스페인어로 이야기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걸었다.


생각보다 길이 험했다. 왜 이렇게 질척거리지.


"이 길이 맞아?"


키 큰 친구가 말했다.


"응. 맞아


그렇게 한 시간 반정도를 걸었다. 밭을 가는 농기계 위에 앉아있던 아저씨. 우리 셋을 쳐다본다. 역시 자국인이 나선다. 호세 아저씨가 성큼성큼 걸어가서 물어본다. 아저씨 특유의 작은 한숨. 그리고 '오 마이 갓'이라는 표정으로 키 큰 친구와 나에게 다가왔다.


"돌아가래"(의역)


IMG_5881.JPG 길을 헤매고 한참 산을 타고나서야 볼 수 있는 경치

이렇게 오래 산을 탔던가. 돌아서 나오는 길도 헤매면서 나왔다. 키 큰 친구가 말한다.


"우리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어. 이렇게 멋진 뷰를 본 적 있어?"


나는 수긍했다. 그리고 키 큰 친구는 길을 잘못들어선 지점, Rio Torrio 의 알베르게로 향했다. 낮 12시도 안 된 시각.


"난 여기 머물게, 쉬어야겠어"


IMG_5884.JPG 이 표지판이 그렇게 눈에 안 띄었던건가.


키 큰 친구와 헤어지고 호세 아저씨와 막판 11km를 함께 걸었다. 평소 걸을 땐 느릿하게 걷는데 산을 타면 기계처럼 발걸음이 빨라지는 나를 두고 호세 아저씨는 자제시켰다. 길을 걷는거지 빨리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평소에 이 말을 들으면 '참 문어체스럽다'고 생각했을텐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걷는 속도를 늦췄다. 나중에 체력이 바닥났다. 비아나에 도착해서 알베르게보다 카페부터 들어갔다.


IMG_5900.JPG Cafe con leche 카페라떼, 2.20유로


IMG_5930.JPG Albergue San Pedro 8유로, 이 날 4명이 머물렀다.


#돌이켜보니


알베르게에는 스페인 사람들만 있었다. 스페인어를 잘하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게 아니라 거의 '옹알이 수준'으로 하는데 그 곳에서 만난 분들은 칭찬을 많이 해줬다. 아이가 '음~마'하며 '내 새끼가 엄마라고 벌써 말하네'라고 오야오야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기분이 좋아 근처 산책을 갔다가 중국인이 운영하는 잡화점에 들러 두툼한 양말 세 켤레를 샀다. 흰 양말을 사고 싶지 않았는데 흰 양말 밖에 없었다. 흰 양말을 빨아도 빨아도 다시 하얘지지 않았다.


역시 이 날 일기장에는 긍정적 소감이 돋보인다.


"서로를 'three idiots'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어쨌든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으며 든 생각은 잘못된 길도 되돌아가면 원점으로 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것."


IMG_5925.JPG 알베르게 뒷편에서 바라본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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