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_소리없는 아우성

비아나에서 로그로뇨(Logroño)까지

by 마감인간
일관실기 첫 번째 프로젝트는 '발끝따라걷기' 2014년 11월 6일부터 12월 9일까지 스페인 순례길 산티아고길을 33일간 걸었다. 아주 뒤늦게 스페인 팜플로냐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으며 썼던 기록을 정리해본다.


길을 헤매는 바람에 비아나에 멈췄던지라 로그로뇨까지 11.9km. 아침 7시 50분에 출발해 오전 11시에 도착했다.

IMG_5931.JPG 로그로뇨로 가는 길


여름과 가을의 길은 더 예쁘겠지?


하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때 걸어도 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의 총량은 비슷할 것 같다. 이 날도 걸으면서 멋진 풍경을 몇 번 봤는데 그 멋진 풍경도 길어봤자 5분 정도 나의 마음을 빼앗겼던 것 같다. 메마른 사람이 아닌데 상황은 늘 비슷했다. 시시때때로 풍경에 감탄하지 '못'했지만 때때로 '아'하고 감탄했다. 길을 걷다가 무심코 뒤를 돌아보며 풍경을 한 두번 살폈던 것 같다.


IMG_5938.JPG 무제-길

걸어야하느니라.

땅에 내는 길도 좋다. 길이 없을 때 나의 발걸음으로 길을 만드는 것.

하지만 물에 내는 길도 좋을 것 같았다. 길을 만들어도 길이 사라진다는 것. 물길에는 길이 없다.


IMG_5939.JPG 로그로뇨 초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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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을 자처했지만 그럭저럭


그래, 어쨌든 땅에서 걸어다녔으니,

길을 걸을 때 뭐가 좋았냐고 묻는다면 숙소에 도착해서 배낭을 두고 맨 몸으로 돌아다닐 때라고 답할 것이다. 어쨌든 한 걸음씩 걷다보니 '언제 도착하나' 했던 곳에 당도해있다는 사실과 그 감흥을 안고서 과일 사러, 피자 먹으러 갈 때가 좋았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고행을 자처했지만

나는 라이트패딩을 목까지 잠그고, 물집을 터뜨린 뒤 약을 바른 발을 등산화에 쑤셔넣고

도시를 맴돌았다. 동양인을 보기가 어렵군. 비가 온 탓에 보도 곳곳에 얕은 물웅덩이가 있다.

껑충껑충 웅덩이를 뛰어넘으니

왼쪽 엄지 발가락이

'아오, 나 살려'

오른쪽 새끼 발가락이

'나도 살려'

소리없는 아우성.


피자와 까페꼰레체를 먹으니

발가락들이 다시 분노한다. 뜨끈뜨끈.

IMG_5945.JPG 한 끼 식사



IMG_5947.JPG


일기 中


"날이 너무 춥다. 워낙 일찍 도착해 이리저리 도시 관광을 하려해도 추워서 돌아다니기가 어렵다. 성당을 둘러보고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1시. 러시아에서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대문호의 작품이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 지 살짝 이해가 갔다. 스산하다. 내일도 이렇게 춥다면 나헤라까지 30km를 걸을 수 있을까."


#돌이켜보니


말할 사람이 없었다. 이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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