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늘다니. 나는 퇴보하는 기분이 들었다.
현재 세 번째 신경정신과에 다니고 있다. 아니, '다니고 있다'라고 하기엔 아직 한 번 가봤다. 그러나 곧 두 번째 내원일이 다가오는 김에 내가 다녔던 신경정신과에 대해 잠시 써보기로 했다.
두 번째 병원의 선생님은 첫 번째 병원의 선생님과 나이대는 엇비슷해 보였는데 성별은 달랐다. 약은 병원 카운터에서 제조되었다. 약봉투를 건네주던 간호사 선생님의 실반지를 여럿 낀 손이 기억에 남는다.
두 번째 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내 우울증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무겁다고 보았는데, 그게 나랑 잘 맞지 않았다. 나로서는 외부 활동도 늘었고, 자살사고도 이제 거의 없을 정도로 줄어들고, 발작적으로 울고 소리치는 일도 최근 일 년 동안 없었기 때문에 많이 나아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생님의 소견이 그랬던 이유는 일단 그전의 나를 (당연히) 모르시기도 했고, 이 병원에 오는 길의 풍경이 음울한 구석이 있어 진료실에 들어갈 즈음이면 내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다음의 말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청소가 힘들고 몇 년 지난 이삿짐을 아직도 다 풀지 않았어요. 그게 힘들어요.
그러나 혹시 내 실제 상태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질까 봐 그렇다고 내가 쓰레기장 같은 방에 사는 건 아니고 분리수거도 잘 한다고, 다만 만족스럽고 예쁘게 정리정돈된 방을 만드는 게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이고, 그건 심하네요. 심한데요.'라며 약을 증량했다. 아... 약이 늘다니. 나는 퇴보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전문가가 처방해 준 약이니 그래도 먹는데 증량된 약을 먹는 동안 너무 나른하고 늦잠이 많아졌다. 약을 늘린 게 나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병원에서 한 간단한 검사에서 나는 경도 우울증의 증세를 보였다고 나왔기 때문에 약을 더 먹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약을 늘린 것에 대한 걱정을 내비쳤으나 선생님은 답을 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리고 병원을 바꾸기로 마음 먹은 결정적인 이유는 의사 선생님과 나의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아이스브레이킹인지 뭔지 의도를 잘 모르겠는 몇 가지 말들이 내게는 참 할 말이 없는 기분으로 와닿았다. 나쁜 분은 아닌데 계속 상담하기엔 안 맞는 분 같아. 이 병원의 마지막 내원일에 또 비슷한 느낌의 말을 들었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이 병원에 더 못 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서 다른 병원에 대한 리뷰를 검색하느라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