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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너울 Jul 23. 2023

자라남이 서러웠을 때 (1)

성장의 호수에서, 예정된 표류의 감각.

아빠가 늙는다는 사실을, 부모님도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을 자각한 건 중학교 때였다. 엄마 아빠의 나이는 해마다 새로 세어도 두 분이 늙어간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다. 전혀 와닿지가 않았다. 아빠도 늙는다는 걸 깨달은 뒤에야 내가 그때까지 엄마, 아빠는 늘 같은 곳에 같은 모습으로 있어줄 거라는 착각에 단단히 빠져 있음을 알았다. 무슨 대화 중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가족이 사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아빠랑 낮에 걷고 있었다. 나는 교복 차림이었고 뭔가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가 아빠가 이렇게 반응했던 기억이 난다. “아빠도 늙지, 그럼.” 그리고 나보다 몇 걸음 앞서는 아빠 뒷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쿵, 했다. 아빠가 나이 먹는다. 늙는다. 아빠, 엄마는 변할 거고 날 지켜주던 두 사람은 점점 약해질 거다. 나는 참 속 편한 아이였구나. 이걸 이제 인지하다니.


그때부터였을까? 정확한 시간적 순서나 인과관계를 따질 수는 없겠지만 나는 중학교 2~3학년의 어느날부터 내가 유년기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원히 아이로 남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빨리 홀로 서고 싶지도 않았다. 나와의 합의는 커녕 어떤 ‘납득 가능한’ 언질도 없이 내 시간이 마구 흘러가 나를 유년의 세상으로부터 밀어내고 있다는 느낌에 종종 사로잡혔다. 나는 그것이 참 불합리다고 생각했으나 제 일을 다하는 시간을 막을 수도 돌릴 수도 없었다. 그저 나의 갈 곳 없는 막연한 감정, 어디 내놓고 얘기하기도 뭐한 그 감정의 이름도 몰라 당황하며 불만과 불안을 쌓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감각은 잊을만하면 나를 감쌌다. 그 감정은 단순한 일상 속에서도 느껴질 때가 있었고, 어떤 콘텐츠를 보고서 자극받아 떠오를 때도 있었다. 체육 시간 중 스탠드 위에 앉아 있을 때였다. 잠시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으면 또 밀려나는 감각이 들었다. 무언가의 중심에 있던 내가 서서히 주변으로 밀려나 그 구역의 밖으로 나갈 것만 같다. 저변의 저변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렇게 나를 밀어내는 것은 물이었다. 어떤 완력이 나를 강하고 빠르게 밀치기 보다는 수면 위에 반쯤 둥둥 떠 있는 내 자아가 잔잔하지만 꾸준한 물의 흐름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예정된 표류의 감각이었다. 


감각이 지속되면 감정을 남긴다. 나는 한동안 비슷한 감각을 느낄 때마다 뒤따라오는 감정의 정체를 알 수 없어 곤혹스러워했다. 그러다가 ‘아, 나는 지금 서럽구나’ 하고 감정의 라벨링을 할 수 있게 된 건 <벼랑 위의 포뇨> 오프닝 시퀀스를 처음 볼 때부터였다. 그 영화의 오프닝은 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 느낌이 물씬 났다. 내 기억에 그 시퀀스에는 그렇게 슬픈 장면도, 위험을 알리는 장면도 딱히 없었던 것 같은데, 그때 그걸 보는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저 어린 세상은 나를 밀어낸다. 난 아직 여기에 더 있고 싶고, 내가 어리다는 사실을 이제야 받아들였는데. 유년의 세상은 가차없이 나를 내보내려 하고 있었다. 그 밀려남의 감각이 서러워서 울 것 같은데, 울면 옆에 엄마랑 동생 보기가 얼마나 민망해. 남들은 그저 흥미롭게 기대감에 차서 보는 영상 앞에서 나 혼자 울기 싫어서 꾹꾹 참았다.


또 한 번 대표적으로 남았던 경험은 그로부터 몇 년 후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단의 합창을 들었을 때다. 목소리 고운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느꼈다. 아, 나는 이제 거의 다 밀려났어. 밀려남의 초반도 아니라 끝물에 있어 이제는 헛헛함이 든다는 것을, 아직 높은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내는 소년들의 합창을 들으며 실감했다. 일상에서는 정체 모를 기묘한 감각-감정을 간신히 포착해서 주머니에 꼭꼭 넣어두고, 예술하는 사람들의 작품을 볼 때면 불현듯 내 감정의 형체를 파악하곤 했다. 


그 철없을 때부터 느낀, 예정된 표류의 감각. 어른이 되면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하고, 고민고민마다 정답도 없고, 작게 기쁜 일도 자기가 움직이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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