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존재가 중심에서 주변부로 밀려나는 감각.
나는 수채화로 칠한 푸른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걸 인지했을 때는 이미 호숫가로 천천히 밀려나가기 시작한 후였다. 완전한 풍경 속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내 심상 속에서 오로지 호수 하나만으로 존재한 그것의 가장자리 역시 수채물감으로 칠해졌다. 그러니까 호숫가를 나타내는 경계선이 선명하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물맛 특유의 번지는 것으로 그 느낌이 제법 알근하다.
그 희미한 호숫가 너머의 공간에 무엇이 더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더 큰 물이 있을 수도 있고, 안개 속 미지의 땅이 있을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면 고대 신화 속 ‘끝이 있는 바다’처럼 더 넘어갈 곳 없이 아래로 뚝 떨어지는 지형일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가상의 지형도가 아니라 이미 실재하는 ‘밀려나는 감각’이다. 나라는 존재가 중심에서 주변부로 밀려나는 감각. 그것은 태어나 한동안은 세상의 중심이었다가, 나와 세상의 관계를 사유하게 되며 생겨나는 감각이다. 내가 우리 가족의 특별하고 소중한 작은 아이였다가, 결국은 자기 모든 걸 책임지기 시작하며 평범함도 힘겹게 소중한 어른이 되어갈 것임을 자각하는 데서 오는 아득함이다.
지금에야 그 아득함의 시작점에 부모님의 나이듦에 대한 자각이 한 몫했다는 생각을 하지만, 당시에는 그 둘을 전혀 연관짓지 못했다. 나는 시간의 필연성을 막 실감하게 된 중학생으로, 그때도 아직 한참은 어렸던 것이다. 한창 사춘기의 영향도 있어서 나는 대신 내 속을 들여다 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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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웬걸. 애써 내 속을 들여다 봤더니 내 눈에, 손에 걸리는 것은 나의 허한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