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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너울 Aug 13. 2023

실타래 한 가닥 풀면 외로움이

이건 너무 매몰차잖아

아쉬움은 난 자리 이상의 빈 공간을 비로소 자각하게 만든다.


처음 느끼는 것은 딱 있다가 없어지는 만큼의 빈자리다. 친구들 떠드는 소리가 집 안에 꽉 찼다가 사라지는 만큼. 혹은 영화 한 편의 서사가 내 안에 들어와 갖은 감정을 일깨우다가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그 반응도 멎는 것처럼. 


있었다가 떠난 만큼의 빈자리를 길게 보고 있으면 내 마음속 구멍이 보인다. 흙바닥에 크고 작은 구멍이 여럿 뚫려 그것을 관찰하고 있다가 저 아래 사실 더 깊고 큰 구멍-일종의 동굴이 있었음을 알게 되는 식이다. 땅에 깊게 뿌리 박혀 있던 식물이나 돌이 뽑혀 나갈 때 생긴 구멍들은 언젠가 다른 것으로 채워지거나 젖은 흙으로 점차 메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아래에 있는 커다란 공동(空洞)은 근본적으로 메울 수 없다. 이것은 나의 자산인 다른 풍부한 감정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내 외로움은 태생부터 나와 함께 있었다. 



외롭지 않으려고 이것저것 했는데 막상 외로움은 내 안에 있더라. 게다가 채워도 채워도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 게 인간의 외로움이라니. 이걸 깨닫고 받아들이기까지 딱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에서 한 해 정도를 뺀 만큼의 긴 시간이 걸렸다. 나는 한창 외로움을 타던 시기의 내가 가장 추운 줄 알았다. 그러나 외로움의 본원적 성질을 깨닫고 나서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 살아가야 하는 앞으로의 시간이 훨씬 더 차가워 보였다. 


이렇게 해갈될 수 없는 외로움과 평생 같이 가야 한다고? 음, 이게 답일 리 없어. 


이건 너무 매몰차잖아. 


답안지는 이미 받아 들었지만 있는 힘껏 모른 척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울지 않게 되었다는 H의 말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독립도 훨씬 빨리 해서 이미 생계를 자기 손으로 해결하고 살던 친구는 당황한 나에게 울어서 바뀌는 거 하나도 없다고 덧붙였다. 아마 그 친구는 나보다 빨리 외로움의 민낯을 직면한 거였겠지.   


반면 아직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한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외로움의 성질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한참 더 걸렸다. 살면서 외로웠을 때야 수없이 많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기억에 남는 외로움의 기간을 꼽아보면 5년 전과 1년 전 일들을 말할 수 있겠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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