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라는 단어는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인간도 동물이지만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왜 일까?
흔히들 말하는 동물이라는 것은 애완동물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귀엽고, 사랑스럽고, 내가 지켜 주어야 하는 생물.
이전부터 나는 동물을 매우 좋아했다. 무언가 대화는 할 수 없지만 지성을 가지고 있기에 동물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며,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하고 생각하는 것은 재미있고, 흥미로운 주제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을 알 수 없는 신비주의의 동물이 있다면 당연히 고양이가 아닐까?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고, 어느덧 다가오는가 싶다가도 어느새 보면 사라지고 없는 고양이들.
내가 다니는 학교에는 작은 휴식처에 벤치들이 모여있는 공간이 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공간의 특성상 사람들이 잘 접근하지 않는 곳이다. 학교에 오래 남아 있던 어느 날, 오후를 지나 저녁쯤이 되던 때 그곳에는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모여있었다. 처음에는 약간 무서운 감정도 있었다. 어스름이 진 저녁에 형형색색 빛나는 고양이의 눈들과 아기의 울음소리 같은 고양이의 목소리는 신비하지만 알 수 없는 공포로 내가 다가왔었다.
그러나 두려운 마음에도 신비로운 광경에 눈을 떼지 못하였을 때, 바라본 고양이들의 모습은 많이 야위어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문득 고양이들의 눈빛과 목소리가 나에게 배고픔을 알리는 신호로 다가왔다. 무의식적으로 주머니를 뒤져보았을 때는 먹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후 곧바로 연구실 냉장고에서 우유를 가져오고 종이컵을 반으로 잘라 우유를 따라주니, 멀리서 경계만 하던 고양이들이 하나둘 다가와 우유를 핥기 시작했다. 가까이서 바라보니 그중에서도 덩치도 작고 새끼인 고양이가 야윈 모습을 보니 계속 보모 역할을 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다음날 오후 7시경에 그 벤치에 가보았더니 고양이들이 있었기에 우유를 주었다. 이전보다 가까워진 것 같기도 하였기에 그중 한 마리를 잡아서 무릎에 올려놓아도 잘 올라와 있었다. 다른 한 마리의 경우 사람에게 안 좋은 기억이 있는지 손만 닿아도 흠칫거리며 거리를 두었었다. 예전 길고양이에게 손을 뻗다가 고양이가 장난처럼 앞발을 위에서 아래로 그었을 때 손등에 상처가나 욱신거린 적이 있었기에 약간은 무서운 감정도 있었지만 올려두어도 의외로 발톱을 세우지는 않았기에 보들보들한 털을 열심히 만질 수 있었다.
그다음 날 이리지리 일이 많아 저녁에 시계를 보니 오후 8시경이 되어 벤치로 가보았는데 고양이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문득 아쉬운 마음이 들다가도, 시간을 못 맞춘 내가 잘못했구나 싶어 다시 돌아왔다.
이후 관심이 없어졌는지는 몰라도 고양이 벤치 쪽으로는 잘 가지 않았다. 몇 달 정도 지나고 길에서 작았던 새끼 고양이가 통통하고 덩치가 커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문득 가까이 가보니 경계하는 눈빛으로 뒤로 물러난다. 기억하지 못하는지 아쉽기도 하면서도, 내가 원할 때만 가서 우유를 주고 이후에는 챙기지 않았는데 내가 원하는 대로 다가오지 않아서 섭섭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이기적으로도 여겨져 그냥 손만 흔들어 주고 돌아왔었다.
그 후로 동물, 특히 애완동물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마다 벤치의 고양이들이 생각난다. 애완동물이란 항상 원하는 대로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지켜주어야 할 동물로 남아있어야 하나? 키우는 주인의 입장에서도 애완동물이 나를 만족시켜주기만을 바라지 말고 내가 원할 때가 아닌 동물들이 원할 때 지켜주고 보호해 주며 서로 소통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고양이는 재미있다. 개처럼 주인이 못되게 굴어도 바보처럼 기다리는 캐릭터가 아닌, 주인이 못되게 굴면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을 것 같은 캐릭터이다. 고양이를 키워본다면 나의 행동을 돌아볼 수 있는 작은 계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